'야구가 좋다' 방황하는 청소년 맘 다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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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푸르미르 야구단’을 만든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허욱 경장, 신상영 경장, 박태규 경사, 유현욱 경사, 박준수 감독, 최익성 대표. [박종근 기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들이 경찰서와 손잡고 비행 청소년 지도에 나섰다. 최익성(41)씨와 박준수(36)씨가 각각 대표와 감독을 맡은 서울동대문경찰서 ‘푸르미르 야구단’이 주인공이다. 프로야구 선수가 참여하는 지역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씨는 프로야구 선수 시절 ‘저니맨(journey man)’으로 통했다. 11년간 6번이나 팀을 옮기면서 붙은 별명이다. 1994년 삼성라이온즈에서 프로야구에 데뷔한 뒤 2005년 SK 와이번스를 마지막으로 한국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미국으로 건너간 최씨는 2년간 외국에서 선수 생활에 도전하다 결국 2007년 은퇴했다. 은퇴한 뒤엔 방황하거나 팀에서 낙오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재활을 전문적으로 돕는 ‘저니맨 야구육성 사관학교’를 세웠다. 동대문경찰서로부터 관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받았을 때 최씨가 선뜻 승낙한 이유다.

2011년 기아 타이거즈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프로야구 후배 박준수 선수도 재능 기부를 하겠다며 감독직을 받아들였다.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6월 이 팀을 창단했다. 임정섭(57) 서장은 “1년 단위로 이뤄지는 장기 프로그램을 통해 비행 청소년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야구단에는 관내 9개 중학교에 재학 중인 2~3학년 학생 23명이 참여하고 있다. 순수하게 야구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상습적으로 본드를 흡입하거나 자전거 등을 훔쳐 경찰서를 드나든 경력이 있는 학생이나 가정폭력 피해 학생, 탈북 청소년 등 보호 대상 학생 10여 명이 함께 뛰고 있다.

 지난달 6일 강원도 춘천으로 1박2일 전지훈련을 다녀오는 등 10번의 연습이 지나자 아이들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야구단에 참여하고 있는 아들 황덕기군을 지켜본 황병열(44)씨는 “야구를 하면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아이로 변했다”면서 “이제 새벽에 아들을 찾으러 길을 헤매는 일은 없어졌다”며 웃었다. 푸르미르 야구단에 참여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류미 박사는 “본드에 중독되는 아이들은 그것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게 없기 때문”이라며 “어른들은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것보다 야구처럼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제시해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최익성씨는 “세상이 문제아를 만든다”며 “이 아이들을 문제가 있는 아이들로 볼 게 아니라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정종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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