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귀에 칩 달아 스마트폰으로 먹이량 조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제일종축에선 임신한 어미돼지를 옴짝달싹못하는 ‘스툴’에 가둬놓지 않고 풀어 키운다. 돼지가 급식기에 스스로 들어가면 돼지 귀에 붙은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칩이 인식돼 먹이 양을 통제한다. [이천=최승식 기자]
스마트폰으로 개별 돼지 정보를 보고, 축사 상태도 제어할 수 있다. [이천=최승식 기자]

지난 9일 오전 11시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큰 길에서 3㎞의 시골길을 들어가자 깔끔한 외관의 빨간색 대형축사 8개 동이 나타났다. ㈜선진의 국내 최대 직영 양돈 농장인 ‘제일종축’이다. 1975년 지은 축사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지어 지난해 5월에 완공했다. 100m 앞에 다가갔는데도 역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각 축사에 붙어 있는 3단계 냄새제거 시스템 덕이다. 축사 안 공기를 모아 물을 뿌린 필터를 거치게 한 후, 2차로 황산 필터를 거쳐 마지막으로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소나무 뿌리 우드칩과 미생물 벽으로 내보낸다. 흔히 축사 하면 연상되는 파리도 볼 수 없었다.

 이곳엔 질병 전염을 막기 위해 외부인은 사전에 신청한 사람만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월요일 들어갈 수 있다. 기자가 빨간 액체에 잠긴 발판을 밟고 에어샤워를 거친 후 손 소독제를 바르고 났는데도 축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샤워를 하고, 옷을 전부 갈아입어야 했다.

실시간 돼지에 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종합상황실. [이천=최승식 기자]

 임신한 어미 돼지들이 자라는 동에 들어서자 수십 마리의 돼지 중 일부는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고, 일부는 먹이를 먹고 있다. 돼지들의 한쪽 귀에는 모두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칩이 달려 있다. 자동으로 닫히는 급식기에 돼지가 들어서자마자 붙어 있는 모니터에 개별 인식번호와 그날 먹은 먹이의 양, 질병 유무, 예정 분만일이 떴다. 하루 지정 양을 이미 먹은 돼지들은 급식기에 들어서도 먹이가 나오지 않는다. 먹이를 적게 먹은 돼지들은 특별 관리된다.

 조병철 제일종축 번식파트장은 “다른 양돈 농장에선 임신한 어미 돼지들을 거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틀인 ‘스툴’에 가둬놓고 키우는데, 이곳에선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며 “유럽연합(EU)의 동물복지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신한 어미 돼지들의 개별 상태는 종합상황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축사 안 와이파이로 개별 돼지 정보가 실시간 전송되기 때문이다. 환기 상태·온도 변화·내부 압력도 실시간 제어된다. 스마트폰으로 원격제어도 가능하다. 조승현 제일종축 팀장은 “퇴근 후 팬이 꺼진 적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두 시간 만에 원격으로 고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키우는 돼지는 모두 1만8300여 마리로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다. 하지만 현장 직원 수는 15명으로 다른 곳의 절반 수준. 모두 자동화 덕이다.

 양돈 비용 중 사료비가 약 60%를 차지하는데, 맞춤 관리를 하다 보니 사료비를 약 10% 아낄 수 있다. 또 풀어놓고 건강하게 키워 항생제가 들지 않고 돼지고기 품질을 나타내는 등 지방 두께 비만도도 다른 곳보다 높다. 권혁만(50) 선진 양돈부문 대표는 “무엇보다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어미 돼지 한 마리당 낳는 새끼 돼지 수가 26두로 국내 평균인 20두에 비해 월등하다”며 “운영이 안정화되면 선진국 수준인 33두에 근접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냄새·무항생제·동물복지’의 첨단 시설을 갖추는 데는 200억원이 들었다. 하지만 권 대표는 “이곳에서만 한 해 30억원의 순이익이 나 투자비를 7년이면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외국산 싼 돼지고기가 밀려드는 와중에 생산성을 높여야만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돼지고기 1㎏을 생산하는 데 한국은 약 4000원이 들지만 축산 강국 유럽은 2600~2800원만 든다. 권 대표는 또한 “현재 축산농가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비싼 사료값과 악취로 인한 주변 민원, 낮은 생산성인데 이를 과학과 투자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천=최지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