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외면한 버스 값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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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버스 요금이 6일부터 일제히 인상되었다. 서울의 경우, 일반 버스는 10원에서 15원으로, 합승 버스는 20원에서 25원으로 각각 올랐으며, 지방은 구간제를 없애고 그동안 한 구간에 10원 받던 것을 일률적으로 20원씩 받도록 한 것이다.
지난 8월, 교통부가 버스요금의 인상을 허가해 주기로 결정했을 때, 당국은 국민들에게 그것이 운수업자들에 의한 몇 가지 선행조건의 이행을 전제로 한 것임을 되풀이 변명처럼 말하고 있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선행조건이란 ①2천5백대의 노후차량을 새차로 대체하며 ②모든 버스의 차내 시설을 정비, 미화시키며 ③운전사와 여차장 등 종업원의 대우를 개선하여 대민 서비스를 강화키로 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당국이 상당한 시일의 여유를 두고 업자들에게 지시했다고 알려진 이들 선행조건은 오늘 현재까지 거의 하나도 이행되지 않은채, 버스 요금만이 어김없이 인상되고만 꼴이 되었다. 이런데서, 이미 기정 사실화한 버스 요금인상 후의 시민감정은 업자들의 파렴치에 대한 분격보다, 시민 측보다 오히려 업자 편에서 있는 것 같은 당국의 무책임과 무능에 대한 공분이 끓어오르는 것을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대중교통수단이 사실상 버스와 택시 중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은 다 아는 바와 같다 할 것이며, 그나마 러쉬아워에는 그 절대량이 부족하여 일반 국민은 택시에 대한 선택권마저 좀처럼 바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일반시민으로서는 요금이 비싸든 싸든, 또 버스의 시설이나 서비스가 좋건 나쁘건, 꼼짝 못하고 그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강자의 입장에 있는 것이며, 때문에 운수업의 공공성은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 특히 강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리가 이러할진대, 이번처럼 교통당국이 업자의 보호육성이라는 것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처사를 강행한다면, 이 나라의 교통행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조차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일반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치안국의 통계에 따라 올 들어 8말 현재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2만3천74건의 교통사건 중 그대부분이 운전사의 교통법규위반과 차량의 정비불량에 있었다는 점을 특히 상기시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집계에 의하면 현재 시내에서 운행되고있는 버스 3천7백55대(일반 버스1천4백40대·좌석 및 급행 버스 2천3백15대) 중에는 운행년수 3년 이상의 것이 6백71대, 10년 이상의 것이 6백21대로서, 요컨대 전체 버스의 33%가 시민의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노후 차량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교통당국이 버스 요금인상의 선행조건으로서 노후차량의 대체를 지시한 것은 필수 불가결한 조치가 아닐 수 없으며 그것은 결코 흥정의 여지가 없는 선행조건이었다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당국이 다른 조건도 아닌, 바로 그 조건, 즉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어있는 노후차량의 대체조건마저 흐지부지 덮어둔 채, 요금인상만을 앞질러 허가해준 것은 그 저의마저를 의심케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당국으로서는 이와 같이 실정 하에 이미 인상된 버스 요금의 환원을 이제 와서 다시 고려하기도 어려울 것이지만, 우리의 처지로서는 교통행정이 국민의 복지문제에까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질 만큼 큰 비중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뒤늦게라도 앞서 공약한 선행조건을 기어이 관철시켰다는 확증을 국민에게 보여주기까지는, 교통행정 전반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씻을 길이 없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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