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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중국 국방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군의 날」 행사의 빈객으로 우리 나라에 온 자유중국 국방부장 인걸씨는 「국군의 날」 퍼레이드 중에 향토예비군의모습이 가장 미덥고 인상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장으로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한바 있는 황 부장은 『스스로 돕는 아시아를 돕겠다는 것이 「닉슨·독트린」이라면 미국은 마땅히 한국과 같이 자주국방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를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조선호텔로 그를 찾은 기자에게 말했다.
49년 대륙을 잃고 대만으로 쫓기던 고난을 이기고 오늘엔 국민소득 4백 달러-. 소총·자동화기·각종 포와 전차까지 생산하는 「관동」사령부를 갖게되기까지의 자주국방에의 역정을 더듬으면서 그는 『미군철수니 어쩌니 떠들지만 우리는 이미 20년 전에 교훈을 터득했지요. 무턱댄 미국일변도로는 큰일이겠다 싶어 서독방위차관의 문을 노크했어요. 이젠 무기생산은 걱정 없읍니다. 미 군원은 5천만 달러를 하회합니다. 미군은 고문단뿐이지요.』 허리끈을 졸라매고 자립국방을 주도했다는 황 부장은 68세의 노령에도 정기어린 눈을 굴리며 장성들의 집은 아직도 패전일본장교들의 숙사를 고쳐 쓰고 있는 정도로 내핍을 지켜왔다는데 그의 손목에 걸친 낡을 대로 낡은 시곗줄이 눈을 끌었다.
정 부장은 황포 군관학교 1기생으로 공교롭게도 임표 중공국방상과 동창인 사이-.
24세 때 사단장·군단장을 지냈다. 국방차장·호남생장·인지주둔군 총사령관 등 요직을 모조리 거친, 그는 장개석 총통의 그림자처럼 따랐는데 총통부 참군장(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격)·대만경비사령관, 그리고 최근까지 국가예산의 70%를 가진 대만생장을 지내다 장경국씨의 후임으로 국방부장에 발탁됐다.
경회루 파티 자리에서 정광호 해병대 사령관에게 『사열대에서 보니 해병대는 단 한 명도 손발이 틀리는 사람이 없으니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묻기도 한 그는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대통령의 기억력에 감탄했다고-.
박 대통령이 10여년 전 관구 사령관 때 대만을 방문했을 때 그가 만난 군 장성급 지휘관 이름을 낱낱이 기억해내어 안부하는데 놀랐습니다. 장 총통이 최근 가벼운 차 사고로 몸져누운 것을 알고 각별한 문안을 하여 또 한번 놀랐다는 것-.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정내혁 국방부 장관과 요담한 황 부장은 지역집단 안보체제에 대한 전망을-『북괴가 중공과 소련에 연접해 있고 일이 벌어졌을 때는 즉각 개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어 대만보다 훨씬 위급한 상황임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면서 『한국이 피침 됐을 땐 우리정부는 최대의 방법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포공항까지 배웅한 정내혁 국방의 전용차 안에서 정 장관에게 『중원을 회복하는 것은 아직도 지난 한일로 생각되나 한국의 국력이 이처럼 뻗친다면 귀국이 먼저 통일대업을 이룩할 것 같소』 라면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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