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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렉스프레스지 사장 프랑솨즈·지루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여성으로서는 좀 특이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크립터에서 출발하여 영화 감독·편집국장·사장의 권좌에까지 오른 프랑스 굴지의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지의 프랑솨즈·지루 여사. 그녀는 프랑스 지성의 대변자이며 전형적인 프랑스 여성의 심벌이다.
1916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출생한 지루 여사는 부친을 따라 파리로 이사했다.
그녀가 6세 때 잡지사와 통신사를 경영하던 부친이 사망하자 이때부터 고난과 역경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지루 여사가 사회에 첫발을 디딘 것은 스크립터-. 얼마 후에는 영화 감독이 됐다.
감독 생활에서 그녀의 재능을 비로소 발견케 된 지루 여사는 『마담』·『줄리에타』·『유명한 사랑』 등 수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중에서도 『앙트완과 앙트와네트』는 제1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받기까지 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여사는 나치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에 가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종전이 되자 전쟁으로 남편과 가산을 앓은 불행한 프랑스 여성들을 위해 이 무렵에 창간된 여성 잡지인 엘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지의 창간자인 라자레프 여사의 간청으로 편집국장을 맡게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언론계에 투신케 됐다.
만 7년간을 엘지에서 일한 지루 여사는 53년 세르방·슈레베르씨와 오늘의 렉스프레스지를 창간, 편집국장으로 취임했다.
타임뉴스위크지와 같은 시사 평론지가 없었던 당시의 프랑스 사회에서는 렉스프레스의 등장이야말로 이제까지 잠자고 있던 프랑스 언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었고 전 프랑스 지식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53년에는 스탈린 사망, 한국 전쟁 휴전, 프랑스 경제 부흥의 시작, 인류 최초의 에베레스트 산 정상 정복 등 굵직굵직한 뉴스가 터진 해였기 때문에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창간 당시 남녀 8명으로 시작된 렉스프레스사는 오늘날 자매지까지 합쳐 총 사원 6백명으로 증가됐고 발행 붓수에 있어서도 60년 19만부, 66년 34만부, 67년 50만부를 거쳐 현재는 66만부에 이르고 있다.
평균 1백90 페이지 발행에 61%의 광고를 넣고 있는 렉스프레스지의 경영 방침은 『소수 정예주의』『고 임금제』를 채택하여 프랑스 최고 지성만으로 구성돼 있고 사옥도 깨끗한 최 현대식 시설을 갖춰 모든 면에서 프랑스 언론의 정상을 자랑하고 있다.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정치·국제·사회·여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주 예리한 필봉을 휘두르던 지루 여사는 지난 2월5일 슈레베르씨가 급진당 사무 총장이 되어 정계에 투신하자 그의 뒤를 이어 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최근 보르도 보선에 수레베르씨가 샤방-델마스수상에 맞서 출마하자 렉스프레스는 그를 따끔히 비판하여 다시 한번 그녀의 용기와 독립성을 과시했다. 더욱 사장직은 떠났지만 아직도 렉스프레스·그룹의 회장으로 있는 슈레베르를 비판한데서 프랑스 사회로부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사장이 된 요즘에도 지루 여사는 마지막 판이 내려지는 금요일에는 새벽 3시까지 전사를 떠나지 않고 진두 지휘를 하는 열의를 갖고 있다.
여행을 특히 즐기는 여사는 미국·소련·동구·남미 등 세계 각지를 안 다녀 본 곳이 거의 없으며 요즘은 시나리오를 계속 쓰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어 영화에는 손을 못 대고 있다고 빼앗긴 사생활을 아쉬워하고 있다.
점심 식사도 대부분 집무실에서 방문객과 같이 할 때가 많으며 가장 큰 관심은 『정치』에 있다 한다.
정계 투신 여부는 아직 미정이나 『정치가 모든 일의 원천이며 모든 것은 정치에 달려 있다』고 할 정도로 야심에 차 있다. <파리=장덕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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