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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남 사이공·모이지 발행인 부쨔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월남에는 수많은 신문사가 있고 또한 많은 언론인이 있으나 여자언론인하면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그 수가 적다. 월남에서 유일한 신문학과를 가지고 있는 달라트대학 구엔·곡·린 교수는 『여성언론인하면 수년 전부터 월남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일선기자로 활약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러나 간부급은 더욱 찾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단 한사람 부쨔 여사는 예외다. 월남에는 아직 월남신문사같은 서적이 발간되지 않았지만 내가 만약 월남신문사를 쓴다면 그 업적의 평가는 둘째치고라도 분명 부쨔 여사의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라고 린 교수는 말했다.

<사무실을 침실로 겸용>
현재 사이공에는 46개 일간신문사가 있다. 월남에는 지방신문사가 없다. 그중 유력지 사이공·모이(New Saigon) 발행인이 부쨔 여사다. 단 한사람의 여성발행인이고 간부급이상 여성언론인도 부쨔 여사 이외는 월남에는 한사람도 없다.
사이공시 팜·구·라오가 39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사이공·모이사를 방문, 사장실을 찾았다. 편집국 옆에 붙어있는 사장실은 문이 잠겨 있었다. 여비서가 문을 두드린다. 한참 있다가 잠옷을 입은 채로 뚱뚱한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여비서가 뭐라고 하니까 『알았다』고 끄덕이고는 문을 닫았다. 옷을 갈아입은 부쨔 여사가 다시 나타나 『이 방은 내 사무실겸 침실이다』라고 말한다. 월남말 이외는 외국어를 한마디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월남인통역을 가운데 놓고 알아듣기 힘든 대화를 나누었다. 전화로 약속한 30분 회견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나의 본명은 토·티·탄(To Thi Than). 부쨔(But Tra)는 필명입니다. 1902년 5월3일생이니까 68세입니다』라고 부쨔 여사는 말문을 열었다. 사이공·모이지에는 발행인 Ba To Thi Than Tu But Tra라고 인쇄되어 나온다.
언론계에 투신하기는 1921년. 남편 구엔·덕·누안씨(Nguyen Due Nhuan)와 함께 사이·탄(Sai Thanh)이란 신문을 시작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남편은 75세로 현역서 은퇴>
사이·탄이란 사이공의 옛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75세로 아직 생존하고있는 누안씨는 오래 전에 현역에서 물러나고 부쨔 여사가 경영을 전담하고 있다. 그 전에는 공동경영이었다고 한다. 『신문을 시작할 때는 결혼 전이었지요. 프랑스통치시대였는데 벙어리·귀머거리·장님과 다름없는 월남민족의 눈과 입과 귀를 열어주기 위해 신문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 일간지로는 꽁·루안(Cong Luan) 두억·나·남(Duoc Nha Nam) 덩·랍(Dung Lap) 룩·틴·탄·반(Luc Tinh Tan Van)등 5개사가 있었고 그의 주간지 2∼3개가 있은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옛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담했지요. 수중에는 2백피애스터밖에 없었는데 1만피애스터하는 인쇄기를 3천피애스터를 빌어 중고품을 사 가지고 시작했던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사옥 이 자리였었습니다. 부쨔 여사는 감개무량한 듯 자랑삼아 옛일을 회상했다.

<아들 6형제와 함께 경영>
『그때 직원은 인쇄공을 합쳐 모두 20명 가량 있었습니다. 여성이란 한사람도 없었지요. 저는 사무원·기자·판매원·경영자 모두 겸했지요. 여권을 주장하는 사설이나 기사를 주로 썼읍니다』라고 말한 부쨔 여사는 『불란서인 위정자들에 의해 수없이 정간 당했지요. 소소한 기사로 말썽을 부려 1주일 내지 1개월간 정간 당한 일이 많았으나 신문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2차 대전시 일본군이 점령했을 때 1년간 신문사 문을 닫은 일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어려워서요. 1946년 문을 다시 열었고 그후 l964년 군사혁명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3년간 또 문을 닫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부쨔 여사는 사이공·모이지 이외 4개의 주간잡지를 함께 발행하고 있다. 모두 여성지. 디엔·단(Dien Dan)은 가장 오랜 것으로 12년간 계속 발행하고있으며 나이·마이(Nay Mai)는 8년간, 토이·바오(Thoi Bao)와 탐·틴(Tam Tinh)은 3년간 발행하고 있는데 이 4개 여성잡지의 발행부수는 4만. 사이공·모이는 매일 5만부를 찍고있다.
22세에 결혼. 슬하에 6남2녀를 두고있다. 월남군21사단장 구엔·빈·기(Nguyen Vinh Nghi)장군이 맏사위이고 둘째 사위는 기사로 영국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고 한다. 46세인 큰 아들을 비롯, 아들 6형제는 모두 어머니와 함께 신문과 잡지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사이공=이방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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