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우산들이-기예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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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름엔 우산들이
서로 다툰다, 흐린 하늘을 받들고서
뜰을 지나서 장미를 달고
여름엔 우산들이
깨끗한 빗발의 탄력을 뚫는다.
젖은 바지인채 사나이들이
붉은 술잔으로 가슴을 쓸어내릴 때
오, 장미 향기
가슴에서 목까지 가득 풍긴다.
한 여자는 저 거리로
가슴을 흔들며 쫄랑거리며
깜깜히 뛰어 갔지만
여름엔 우산들이
순환열차의 끝으로 간다.
뜰을 돌아서 씻겨온 향기,
맑게 열린 그대의 눈알 속에서
여름엔 우산들이
다시 꺼졌다 다시 켜지고
발가락 사이에선
떨어져 내리는 젖은 모래알.
벗은 옷에선
오, 한없는 비 냄새.
여름엔 우산들이
알몸인채 그대와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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