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대전의 25시(12)|「딘」장군의 피포|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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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전쟁 동안에 있었던 여러 가지 극적인 사건 중에서도「딘」장군의 경우는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자일라이트」인 장군의 포로생활은 차후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그가 실종되었다가 공산군에 잡힐 때까지의 이야기만 소개하겠다.
일반은 흔히「딘」소장이 실종되었다가 곧 공산군에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장군은 7월20일 밤에 대전을 마지막으로 빠져 나와 우군전선에 도착하려고 적지를 36일 동안이나 헤매다가 8월25일에야 공산군에 잡힌 것이다.

<지프에 부상병 태워 보내>
TV의 극영화『도망자』와 흡사한 장군의 이 36일 동안의 체험은 미국에서「베스트·셀러」였던 그의 한국 전쟁체험수기『죽음의 생활 3년』(My Three Years As A Dead Man, by Maj. Gen. F·Dean)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우리가 대전을 떠나자, 양쪽에서 적 저격병들이 맹렬한 사격을 가해왔다. 지프로 돌파해 나가려고 했으나 잘 안되었다. 어느 지점에 오니까「트럭」이 뒹굴고 있는데. 운전사는 그대로 차 속에 있었다. 나는 지프를 멈추고 그 곳으로 달러가 보았다. 운전사는 이미 죽었지만 트럭 밑에는 두 명의 병사들이 숨어서 서로 항복하자고 의논하고 있었다.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명 몇의 부상병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부상병만 내 지프와 호위군에 실어 떠나보낸 다음 트럭 밑에 있는 사병에게로 다가섰다.


이때 한 명의 공산군이「트럭」에서 얼마 안 떨어진 언덕 위에 나타났다. 나는 들고 있던 M-1으로 그곳을 향해 마구 갈겨댔다. 적병이 언덕저편으로 쓰러져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 때 한대의 야포 견인차가 덜거덕거리며 달려왔다. 어찌나 많은 병사들이 탔는지 더 이상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모두 매달리다 시피해서 올라탔다. 이차는 다시 털거덕거리며 달리기 시작하여 앞서 떠난 무대의 지프가 서 있는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부득이 하차하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은 필이 S자형으로 꾸부러져 있는데다가, 공산군들이 길가에 많은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다리 곁에는 소총부대와 기관총을 걸어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적의 심한 공격을 받아 여기서 참호를 파게되었다. 이 때 나는 내 자신이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M-1 소총은 아까 타고 온 야포 견인차에 그대로 두고 왔으며 권총은 어느새 어디선지 모르게 빠져 나가 없어지고 말았다.

<「딘」장군일행 처음엔 17명>
나는 부관인「클라크」중위에게 점호를 시켰더니 총원 17명이라는 보고였다.
우리는 고구마 밭 저쪽에 있는 적이 제압하고 있는 길로부터 되돌아서 기어 나와 조그만 개울둑까지 오게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둥그렇게 엎드려 진을 쳤다.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참을성을 갖고 이 시련을 이겨내야 하며 밤에 행동하자고 짤막한 훈시를 했다.
이때의 우리사정은 절망적이었다. 가장 긴요한 수통도 몇 개밖에 없었다. 나 자신이나「글라크」중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기도 적었다. 클라크 중위는 어깨에 관 포상을 입어 총을 쏠 수가 없으니 자기 권총을 자꾸 나더러 가지라고 권했다. 나는 이를 받았다. 밤이 컴컴해지자 우리는 행동을 개시하여 개울을 건너 험악한 산기슭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대열 선두에 섰다.
길은 참으로 현하고 대부들은 지쳐있었다. 이 때 바로 클라크 중위가 내 옆에 다가서더니 뒤에 부상병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중위와 나는 다시 필을 되돌아섰다.
거기에는 두 병사가 양쪽에 한 명씩 세 부상병을 부축하고 올라오고 있었으며 또 그 뒤에는 한 명이 혼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따라 오고 있었다. 클라크 중위는 자기어깨에 부상을 입었는데도 어깨의 압박붕대를 북북 찢어서 그 부상병의 다리를 동여매 주었다. 그런데 산길이 하도 비좁아서 두 사람이 한 부상병을 부축하고 걸어가기란 매우 힘들었다.「그 부상자를 내 어깨에 업혀! 내가 혼자서 업고 가는 것이 더 쉽겠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부상병 업고 산길 올라가>
그러나 나 자신은 항상 내가 나이 먹은 사람 (당시 52)이란 것을 잊고 있었다. 부상자의 무게는 내 힘에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에 1, 2분 후에는 숨이 턱에 차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5분마다 클라크 중위와 교대로 부상병을 어깨에 끼고 걷기로 했다.
우리 앞을 가는 대원들은 너무나 빨리 가고 있었다. 그것은 고의가 아니라 내가 어디 있는가를 몰라서, 그리고 어둠 때문이었다. 나와 클라크 중위가 부축해 가고 있는 부상병은 헛소리를 하며 자꾸 물을 달라고 했다. 물은 사실 나 자신도 죽도록 마시고 싶었다.
우리는 앞장서 가는 패들의 뒤를 따르려고 했으나 할 수 없이 자주 멈추어 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또 한번 쉬고 있을 대 어둠 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캄캄한 밤이라서 사방을 분간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나는 물소리를 들었다. 중위에게 물을 떠오겠다고 말하고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다음순간 나는 험한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으나 내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얼 맛 동안이나 이대로 쓰러져 있었는지 몰랐고, 내 머리에 깊이 찢어진 상처를 입었다는 것도 몰랐다. 잠시 코를 땅에 묻고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손과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고 할 때 비로소 어깨를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뼈가 무섭게 쑤시기 시작했다. 나는 심한 현기증과 눈 멀미를 사로 잡혔다. 시계는 밤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내가 쓰러져 있는 곳은 낭떠러지 절벽의 한쪽 구석이었다.

<10「야드」옆에 10명의 적병>
나는 함께 가던 일행으로부터 20야드 이상은 더 떨어져 걸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돼서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는지는 통 알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서 심한 갈증에 사로 잡혔다. 기어서 그 곳으로 가 보았더니 바위틈에서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을 씻고, 미친 듯이 마구 마셨다.
그 다음에 나는 또다시 필과 무릎으로 기어서 언덕으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하고있다. 그리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약 10명 가량의 적군이 물과 10야드 떨어진 곳에서 서성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먼동이 터서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데도 그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왜 나를 못 보았는지 모른다. 그들은 내가 가려던 큰길을 향해서 험한 산마루 같은 언덕으로 기어올라가 버렸다.
나는「클라크」중위와 다른 친구들은 이제 그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머리에는 간밤에 지나간 여러 부하들이 나란히 죽어 넘어진 모습이 나타났고, 더구나 「클라크」중위는 권총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팠다.
적병이 지나간 다음, 나는 또 샘물이 솟는 곳으로 기어가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도 이 물줄기를 알고 있을 테니까 여기서 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서 15피트쯤 떨어진 숲 속으로 기어 들어가 몽롱한 정신 상태로 온종일을 보냈다. 어렴풋이 우리가 떠나온 큰길가로 트럭이 달리고 그 트럭 속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수건에 괸 빗물 짜서 마셔>
내가 둘째 번 언덕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비가 퍼부었다. 비를 보자 또 물이 먹고 싶어졌다.
마침 옆에 넓은 바위가 있었는데 나는 그 옆에 착 붙어 누워서 손수건을 바위에다 폈다. 그리고는 손수건이 흥건히 젖으면 입에다 대고 짜서 한번에 두 서너 방울씩 불을 마셨다. 밤새도록 이런 짓을 하면서 지낸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누가 언덕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위 뒤를 돌아 숨으며 권총을 겨누었다. 이것은 필경 적병 일 테니까.
그러나 뜻밖에도 내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미국 장교였다. 그는 아직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그를 부를 때까지는 그 비참한 길을 걷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누구냐? 어느 부대에서 오느냐?」그는 내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내가 미국사람이란 것을 알자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는 19연대 소속의「스탠리·데이버」중위다. 너는 누구냐?
나는 바위 뒤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이 말음 듣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이런 꼴을 만들게 한 책임자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둘은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부하장교 만나 얼싸안고 울어>
「테이버」중위는 한간 주변을 지키기 위해 내가 투입한 19연대 소속의 대대장교였다. 후퇴 중에 교통 차단을 당하여 할 수 없이 걷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아침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테이버」는 카빈을 갖고 있었고 나는 다리에 권총을 질끈 동여맸다. 나는 이때까지 항상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보행에 있어서는 보통 젊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않았다. 그러나 이날만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 배가 아프고 갈빗대가 결리고 해서 자주 쉬어야 했다. 쉬었다가 다시 걸을 때마다「테이버」중위는 나를 부축하여 일으켜 주었으나 얼마를 가지 못했다.
자네는 먼저 가게. 혼자 가면 빨리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나는 혼자서 피하겠네. 자네는 여기서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매번 반대했다.
「아닙니다. 둘이 가야만 혼자보다 더 유리하답니다」고 하면서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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