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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사건의 저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일 낮 강원도 양구에서 일어난 한 청년에 의한 다방「레지」 인질점거사건은 지난번의 진주사건이 있은지 불과 보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두번째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앞으로 동종의 사건들이 행여나 유행처럼 접종하지나 않을까 큰 걱정이다.
다행히 양구에서는 인질로 잡혔던「레지」등 4명이 모두 탈출하여, 인명피해는 한 명으로 끝났으나 이런 유의 사건이 접종하는 것은 68년 일본에서 있었던「김희로 사건」의 영향이 아닌 가도 생각된다.
김희로 사건 당시 일본은 물론, 국내의「매스컴」까지가 연일 이 사건을 대서 특필하여 그를 일종의 영웅화하였던 까닭에 국내외를 통해 제2, 제3의 김희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 동안에 일어났던 몇 가지 실례를 통해 이제 의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주 사건의 경우는 현역병이 애인을 인질로 하여 결혼을 강요하려던 것으로, 이 사건은 그래도 애정 때문에 이성을 잃은 젊은이의 일시적인 소행이라고 그 동기를 짐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양구 사건은 뚜렷한 동기나 목적조차 없이 그저『사회에 대해서 반항할 따름』이라느니『모든 것을 부수고 싶다』느니 하여「이유 없는 반항」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 세인을 더욱 아연케 하였다.
물론 범인 박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보면, 그가 사회에 대해 화풀이를 할만한 요소가 있었음은 다분히 인정할 수 있다. 박의 누이가 말한 것을 보면, 범인은『아버지의 냉대와 실직·애인 관계 등 많은 고민을 갖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형제들을 괴롭히다 못해 양구에 사는 형에게 찾아가, 거기에서도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해 사고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고 추측 했었다 한다. 우리는 범인이 불우했던 과거를 돌이켜 보며 호소할 데 없는 욕구불만을 최후 발악적인 행동으로 사회에 대해 터뜨리게 된 심정을 알만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에서 제대한 뒤 새삼 생활의 중압을 잡지 못하는 제대군인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선 입대와 동시에 애인과 헤어져야 하고, 그 애인의 사랑조차 믿지 못하여 안절부절못하고, 일부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 몸부림쳐야 하는 사병이 있고, 또 그런가 하면 서울이나 대도시의 어두운 음악감상 실, 다방 등에서는 젊은 나이이면서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머리나 길게 길러 늘어뜨리고 무위도식하고 있는「히피」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자체가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의 사회적 저류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꿰뚫고 보면, 고도의 경제성장과 조국근대화가 운위되면서도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변화의 물결 속에서 참여의 기회를 못 얻고 소외감에 몸부림치는, 이른바「마지널·맨」(변경인)들의 욕구불만·허무감등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밖에도 날로 포악·잔인해 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행태는 6·25동난 후, 한국사회를 휩쓴 찰나주의·배금주의·폭력사태 등 기성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그 원인의 태반이 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여 위정 당국자와 기성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이 슬픈 한국적 현실의 저류를 근원적으로 일소하는데 까지 생각을 미쳐야할 것이다. 『청년이야말로 사회의 거울』이란 점을 바로 인식하여 기성 인들은 사회정화에 솔선수범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들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이를 덮어 놓고 폭력으로 반항하려는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사회가 혼탁하면 할수록 그 청량제로서의 역할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이들 가운데 이런 기풍이 일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나 사회가 그들로 하여금 정의감에 불 탈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드는데 솔선수범을 보여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끝으로 진주사건이나 이번 양구 사건에서 우리가 의아해 하는 것은 범인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범행무기를 입수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진주의 탈영병이 사용한 M1소총과 탄약은 제2 사관학교에서 훔친 것이 드러났고, 양구 사건의 범인 박이 사용한 M2「카빈」도 근처에 있던 군용차에서 훔친 것이라 말하고 있는바, 전기한 두 사건에 있어 무기관리만 잘 되어 있었더라면 애당초 이와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살인사건으로까지 번질 수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군은 무기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여, 적을 무찌르기 위한 총기가 다시는 동포를 살상하는 흉기가 되는 일이 없도록 군기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는 방방곡곡에 조직된 향군들의 무장 때문에 일선의 부대주둔지역이 아니고서도 어디서나 상당한 양의 무기탄약 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와 같은 총기가 관리의 소홀이나 군기의 이완 등으로 허술하게 다루어지는 일이 있다면 이는 국민의 생명의 안위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이로써 조성될 치안상의 불안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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