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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조센진, 더러운 돼지새끼!" 한 재일동포의 절규
Our History 페이스북에 잠깐 들러셔서 '좋아요'를 꾸욱 눌러주세요!https://www.facebook.com/ourhistoryO[StoryO] 김희로 사건/ 평생 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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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48년 전 ‘김의 전쟁’과 일본 헤이트스피치
이정헌 도쿄 특파원1968년 2월 20일, 정확히 48년 전이다.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시미즈(淸水)시 한 클럽에서 총성이 울렸다. 야쿠자 두목과 조직원 등 두 명이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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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도
1968년도01월 21일북한 특수부대원 31명 서울 침투, 김신조 제외 전원 사살01월 23일미군 푸에블로호 북한군에 나포02월 20일재일교포 김희로, 차별 문제 제기하며 야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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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金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족차별을 외치며 인질극을 벌였던 ‘김희로(본명:권희로)’를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영화 은?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던 이 남자도 이제 80줄에 가까워졌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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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수기 독점연재] 20. 어머니, 미움을 넘어섰어요
이제 글을 마치려 한다. 많은 고마운 분들이 생각난다.내 인생에 있어서 박삼중(朴三中) 스님은 아주 특별한 인연이다.현해탄(玄海灘) 을 넘나들며 열성적으로 석방운동을 벌인 그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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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단신] 통독 10주년 심포지엄 外
*** 통독 10주년 심포지엄 KBS는 독일통일 10주년을 맞아 8일 오전9시~오후7시 대한상공회의소 2층 중회의실에서 한국사회학회.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공동으로 '민족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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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 수기 독점연재] 18. 어머니, 미움을 넘어섰어요
18. 감옥에서 찾은 모국어 "히로상(희로씨), 모국의 언어와 역사는 꼭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비열한 인간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더라도 모국에 대한 지식과 정신적 토양만 확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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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 수기 독점연재] 12.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30여년이 지난 지금 고국에 돌아와 새삼스레 당시의 '흉기반입사건' 등을 문제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악감정이 생기는 것은 내가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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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 수기 독점연재]11.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긴상(김씨), 이와나리(岩成)주임검찰관이 마침내 사임했다는구먼. 무척이나 괴로웠던 모양일세. " "긴키로(김희로)를 반드시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겠다" 고 장담하던 이와나리 주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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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씨 수기 독점게재]9.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시선을 멀리 두며 시즈오카 (靜岡) 지방법원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디선가 "희로야, 마케차이캉 (지면 안돼)" 이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복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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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수기 독점게재]8.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넣고 자살하려던 나의 시도는 일본 경찰이 잽싸게 저지하는 바람에 실패했고, 그렇게 세게 혀를 깨물었건만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왜 이리 끈질긴 게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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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수기 독점게재]7.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긴상 (김씨) , 당신 심정은 압니다. 우리 경찰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합니다. 제발 자수하세요. " 민족차별 문제에 대해 일본경찰이 직접 사과하라는 나의 요구에 따라 사건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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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수기 독점게재]5.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68년 2월 21일 막 자정이 지난 시간, 인질극을 벌인 후지미야 여관의 그 첫날,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조금 전 살인을 한 사람답지 않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내 전화를 받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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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수기 독점연재]3.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고노쿠소야로 (이 버러지같은 인간들아) ." 나는 천으로 싼 엽총을 꺼내 야쿠자 소가 유키오 (曾我幸夫.38) 일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정신은 또렷했다. 소가는 소파 팔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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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서울 나들이…정해창.구상.배명인씨 등 찾아
귀국 3일째를 맞는 권희로 (權禧老.71) 씨는 9일 그동안 자신의 석방을 위해 힘써온 국내 인사들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權씨는 이날 오전 10시10분쯤 아시아나 914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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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석방' 은인들]
재일 한국인 무기수 권희로씨가 31년만에 석방되기까지에는 각계 각층의 끊임없는 구명 운동이 있었다. 가장 오랜동안 매달린 사람은 서울 미아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권희로 석방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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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어머니의 선물
서울 남산 제3호터널 가까이 남산으로 향한 작은 길목엔 '초전박물관 입구' 라 쓰인 팻말이 서 있다. 팻말을 따라 1백m쯤 가다보면 섬유박물관이라는 부제를 단 박물관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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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씨 귀국준비 이모저모]
김희로씨의 귀국을 앞두고 분주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 …金씨는 명함의 글자에서부터 석방때 입을 옷과 신발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박삼중 스님은 "金씨는 양복을 입고 출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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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김희로씨 데려오겠다' 중소기업가의 숨은 노력]
"95년 박삼중 (朴三中) 스님이 일본에서 김희로 (金禧老.71.본명 權禧老) 씨의 모친을 뵙고 '꼭 아들을 데려오겠다' 고 말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왠지 그 약속을 꼭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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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씨 모친 편지 첫 공개]
"희로야. 가슴 속에 슬픔이 가득 고여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흐르고 마는구나. 하지만 이 에미는 가케가와 (掛川)에서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고 있다. 네가 복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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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 공판대책위' 일본인들 교포인권향상 밑거름
김희로 (金禧老) 사건 당시 그의 구명에 앞장선 재일 한국인.일본인은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8년간에 걸친 金씨 재판과정에서 구명 운동 외에 일본인의 차별을 도마에 올렸다. 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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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희로 석방운동 앞장 日 오사와 교수
"지난해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석방됐어야 했는데…. " 김희로 (金禧老) 씨 구명을 위해 68년 4월 '김희로 공판대책위원회' 설립을 주도했던 교토 (京都) 세이카 (精華)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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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현대 어학숙' 김희로씨 지원 29년 외길
[도쿄 = 오영환 특파원]지난달 27일 오후 7시 도쿄 (東京) 요요기 (代代木) 쇼와 (昭和) 맨션내 현대어학숙. 10평 남짓한 단칸방에 일본인 4명이 상머리에 앉아 우리말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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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씨 수기 확보 경쟁…日잡지사 6천만원 제시
김희로씨의 수기 집필 계획이 알려지자 벌써부터 국내외 출판사 등이 거액을 제시하며 원고 확보에 나서고 있다. 金씨의 후견인 박삼중 스님 (자비사 주지) 은 29일 "일본의 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