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씨 수기 독점연재] 20. 어머니, 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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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마치려 한다. 많은 고마운 분들이 생각난다.내 인생에 있어서 박삼중(朴三中)
스님은 아주 특별한 인연이다.현해탄(玄海灘)
을 넘나들며 열성적으로 석방운동을 벌인 그 분이 없었다면 나는 고독한 구마모토(熊本)
형무소를 영영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국내에도 할 일이 많을텐데 삼중스님은 왜 일본에 있는 내게까지 눈을 돌렸을까.'인연의 끈'때문일까.

삼중스님은 사건 당시 매스컴을 통해 '김희로(金嬉老)
'란 이름 석자만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84년부터 일본 형무소 교화(敎化)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님,당신이 구마모토 형무소에 처음 면회왔을 때 '당신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당신 어머니에게 반해서 왔소'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배척과 의심의 자물쇠로 꽉 채워진 내 마음은 어머니의 사랑과 당신의 순고한 열정이 없었다면 아직도 열리지 않았겠죠."

삼중스님이 내게 처음 면회온 것은 91년 4월경이었다.84년에 나에 대한 특별면회를 신청했다 실패한 그는 90년에 임진왜란때 희생된 조선인의 '귀무덤(耳塚)
'반환운동을 통해 알게된 하라 겐자부로(原 健三郞)
전 일본 중의원의장에게 간곡히 부탁해 마침내 면회를 성사시킨 것이다.사실 난 삼중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종교인을 신뢰하지 않았다.감옥에서 오래 생활한 탓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의심부터 했다.

삼중스님은 하라 전의장에게 내 특별면회를 부탁하는 자리에서 내친 김에 "보통 무기수라도 10년이 지나면 석방되는데 김희로란 재일한국인이 벌써 22년째 감옥에 갇혀있는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물었다.그러자 하라 전의장은 놀란 표정으로 "긴키로(김희로)
가 아직도 갇혀있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석방을 위해 힘쓸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일본의 유력자에게 그런 말을 들은 삼중스님은 내 석방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께 한시라도 빨리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바로 통역을 데리고 가케가와(掛川:시즈오카의 소도시)
양로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그 곳에서 만난 어머니의 숭고한 모정에 감동한 삼중스님은 그 후 50여 차례에 걸쳐 어머니를 위문하는 성의를 보였다.

하라 전의장의 협력만 있으면 석방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삼중스님의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일본 법무성이 난색을 표명한 것이었다.결국 삼중스님도 한동안 내 석방운동을 포기했지만 어머니는 빠지지 않고 찾아 뵈었다.그러던 중 지난 해 어머니가 거의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도 "희로"라는 말만 들으면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려 하는 모습을 보고 삼중스님은 나를 꼭 석방시켜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굳게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 형무소와의 줄이 끊어져 고민하던 삼중스님은 평소 잘 알고지내던 정해창(丁海昌)
전법무장관에게 나의 특별면회와 석방문제를 의논했다.다행히 정 전장관은 일본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석방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돼 주셨다.죄 많은 내가 어떻게 그 분들의 은혜를 갚아야 할 지 난감하기만 하다.

문득 삼중스님이 수형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생각난다.

"나와 여러분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머리도 깎았고 입고 있는 옷 색깔도 비슷합니다.나도 죄 많이 짓고 살았습니다.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나는 요령있게 죄를 짓고도 감추며 살고있고,여러분들은 발각돼 벌을 받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교도관 어머니를 둔 탓에 형무소와 인연을 맺고 태어났으며,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살았고,세속의 번뇌를 이기지 못해 자살까지 기도했다가 출가하신 삼중스님.그는 나와 참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가석방된 후 많은 사형수와 무기수가 삼중스님과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한국 선원들의 비인간적인 행동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은 조선족 사형수,어머니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친아버지를 살해한 어떤 사형수,강도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삼중스님의 구명운동으로 무기수가 된 시인 구상선생의 양자 등이 절망의 늪 속에서도 나의 석방을 축하하는 글을 보내줬다.사회적으로 '중죄인'의 낙인이 찍힌 그들이 왠지 따뜻하게만 느껴진다.삼중스님은 나의 살인행위에 '민족차별'이라는 원인이 있었듯이 그들이 지은 죄에도 분명 인간적으로 이해할 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살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나이기에 그들을 더욱 외면할 수 없다.내 힘이 닿는다면 고국에서의 여생은 삼중스님과 함께 그들을 돕는데 바치고 싶다.나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소년들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불쌍한 노인들을 돕는 일에도 나설 생각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삼중스님의 말씀은 기구한 내 운명을 돌이켜 볼 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누명에 의한 억울한 죄,권력에 의한 부당한 죄,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원죄 등을 몽땅 짓고 50여 년을 감옥에서 지낸 내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수기를 마친다.못다한 이야기는 곧 출간되는 책을 통해 털어놓을 생각이다.감사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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