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희로 석방운동 앞장 日 오사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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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석방됐어야 했는데…. " 김희로 (金禧老) 씨 구명을 위해 68년 4월 '김희로 공판대책위원회' 설립을 주도했던 교토 (京都) 세이카 (精華) 대의 오사와 신이치로 (大澤眞一郎.62.사회학) 교수.

일본인으로서 재일 한국인의 인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그는 金씨의 뒤늦은 가석방에 기쁨보다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사와 교수가 金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강사이던 31세때.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편견의식이 金씨 사건을 잉태했다고 본 그는 사건 직후 '김희로를 생각하는 모임' 을 결성했다.

공판대책위의 모태는 한국문제 전문가인 가지무라 히데키 (梶村秀樹.사망) 전 가나가와대 교수 등이 참가한 모임. 대책위 결성 후에는 金씨 변호활동 지원을 위한 자금 모금과 대외 보고서 (공판대책위 뉴스) 발간을 맡아 왔다.

당시 보고서는 金씨의 옥중 편지를 공개하고 재일 한국인의 인권 실태를 환기시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그저 여러 뜻있는 일본인과 더불어 공판 지원 활동을 펼쳤을 뿐" 이라고 말했다.

75년 金씨의 형 확정후 공판대책위는 해산됐지만 오사와 교수는 그 후에도 金씨의 석방 운동에 앞장서 왔다.

올 1월 박삼중 (朴三中) 스님한테 金씨 후견인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4년동안 金씨의 뒷바라지도 도맡았다.

"후견인을 朴스님으로 한 것은 金씨 의사에 따른 것이지요. " 그는 "金씨가 한국으로 가게 된 것은 본인 뜻도 있었지만 정황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고 말했다.

金씨 사건으로 부각된 일본인의 차별의식에 대해선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오사와 교수는 "지난 30년간 제도상으로 재일 한국인의 인권은 개선됐지만 일본인의 고질적인 차별 의식은 고쳐지지 않았다" 고 강조했다.

金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그는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지만 요통 등을 앓고 있다" 고 소개한 뒤 金씨가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기를 기원했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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