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씨 수기 독점게재]7.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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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긴상 (김씨) , 당신 심정은 압니다. 우리 경찰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합니다. 제발 자수하세요. "

민족차별 문제에 대해 일본경찰이 직접 사과하라는 나의 요구에 따라 사건발생 이틀째인 21일 오후 서너시쯤 시미즈 (淸水.야쿠자 살해사건이 일어난 시즈오카현의 도시이름) 경찰서 스즈키 (鈴木) 서장이 NHK방송에 나와 사과발언을 했다.

공권력에 의한 민족차별이 있었다는 핵심은 피한 채 빙빙 둘러가며 자수만을 권유하는 말투였다.

다시 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어 전에 내게 "더러운 조센진 (조선인)" 이라며 모욕적인 민족차별적 발언을 한 고이즈미 형사의 사과방송을 요구했다.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 올 무렵 마침내 잔뜩 긴장한 얼굴의 고이즈미 형사가 NHK방송에 출현했다.

"나 때문에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합니다. 제발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말아주세요. " 민족차별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거의 없었다.

화가 났다.

드러눕거나 벽에 기대어 나와 함께 TV를 보고 있던 '인질' 들 대부분이 어느새 내 편이 되어 "긴상, 저 친구 대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어요.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하게 해요" 라고 한마디씩 했다.

나는 전화를 걸어 재차 고이즈미의 사과를 요구했고 그때마다 고이즈미는 사과의 강도를 높였다.

그를 세번 정도 불러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수사본부장인 다카마쓰 (高松) 까지 방송에 나와 사과하는 것을 듣고서야 어느 정도 분이 풀렸다.

그 후 나는 마음 속으로 자살을 준비하면서 먼저 여관집 주인 아주머니와 아이들을 풀어주고 얼마 후 기능사 시험을 쳐야 한다는 사람과 부모가 찾아왔다는 사람 등을 내보내준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엽총 한자루와 1백50개 정도의 다이너마이트, 3천~4천발의 총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다이너마이트 30개는 허리에 감았고 나머지는 나무상자에 넣어 차 안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사람을 시켜 후지미야 (ふじみ屋) 여관방으로 옮겨 놓았다.

일본경찰이 여관쪽으로 접근해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몇차례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총을 쏜 기억은 있지만 세상에 알려진 대로 헬기를 향해 총을 쏜 일은 없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총을 겨누는 장면을 연출시킬 때 따라서 했을 뿐이다.

22일 새벽, 어머니가 사건현장에서 10㎞쯤 떨어진 센즈 (千頭) 란 곳에 와 있다며 전화통화를 권하는 경찰의 연락이 있었다.

그때 난 "어머니, 희로도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답니다.하지만 만나지 않으렵니다. 당신을 만나면 마음이 약해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라고 마음 속으로 말하고는 경찰의 권유를 거절했다.

얼마 후 어머니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가케가와 (掛川.권희로씨 어머니의 식당이 있던 시즈오카현의 소도시) 경찰서 고바야시 (小林) 서장을 통해 깨끗한 속옷 한벌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앞서 말했듯이 부모한테서 받은 몸이니 일본경찰 손에 죽지 말고 깨끗이 자결할 것과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라 총으로 죽을 것을 부탁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요청이었다.

그날 오후 2시쯤 나는 여관 주인 모치즈키 (望月)에게 목욕물을 데워달라고 부탁하고 최후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당시 내가 생각한 자살방법은 청산가리와 엽총을 통한 것이었다.

인간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총만으로 자살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있어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욕을 하는 도중에는 언제라도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총을 근처에 세워 두었고, 난로 근처에 다이너마이트를 쌓아 놓았다.

그순간에도 나를 찾아온 수십명의 '손님' 들이 목욕탕 문밖에 둘러서서 나와 대화를 나누려 했다.

"당신들 중에는 경찰 끄나풀도 있을테지. 품안에 권총을 감추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를 쏘기만 하면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함께 죽을테니 서툰 짓 말라" 고 말하자 사람들은 "앗, 아부나이나 (위험하다)" 라며 뒤로 물러섰다.

나를 취재한 수많은 기자 중에는 앞서 말한 호소카와 (細川) 전 총리와 TBS의 기도코로 겐이치로 (城所賢一郎) 기자, 그리고 어느 방송인지 모르겠지만 기지마 노리오 (木島則夫) 기자가 생각난다.

1시간짜리 생방송인 무슨 모닝쇼를 맡고 있던 기지마 기자는 내게 "특별방송이니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껏 할 말을 해달라" 고 해 응했으며, 그 방송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 '김희로 사건' 의 파문이 번져 나갔다.

기도코로 기자와는 악연이 있다.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고 해놓고 엉터리 방송을 내보낸 그가 밤중에 여관 부근을 순찰 (?) 하던 나와 '외나무다리' 에서 만난 것이다.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와 몇시간 동안 야단을 치고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재

판과정에서 '감금죄' 로 다투게 됐다.

기도코로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 부끄러웠던지 법원의 출두명령을 거부하다 결국 구인장까지 발부받고 벌금형에 처해졌다.

24일 오후 3시10분쯤. 나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현관문을 살짝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몇가지 질문이 오고 가는 순간 모여있는 기자들의 눈빛이 이상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인터뷰를 빨리 끝내고 돌아서는 순간 기자완장을 빌려차고 모여있던 일본경찰들이 거머리떼처럼 달라 붙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내 손은 어느새 청산가리를 넣어둔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계속>

◇ 고침 = 15일자 권희로씨 수기 5회의 '내 조카의 손가락까지 잘랐습니다' 에서 '조카' 는 '사촌' 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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