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성 청년 일제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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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지검은 28일 아침부터 전위예술이라는 해프닝과 히피 성 더벅머리, 해피·스모크 끽 연자, 고고·클럽, 도박 등 일련의 퇴폐사회풍조 일제단속에 착수, 첫날인 28일 하루 동안에 6백77명을 검거, 29명을 즉심에 돌리고 6백48명을 훈방했다.
서울시경의 첫날 단속은 길거리에 오가는 히피 성 더벅머리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 갑작스런 단속은 지난 26일 문화공보부와 경찰관계관회의에서 퇴폐풍조를 고치도록 합의한데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첫날 단속으로 경찰에 연행되자 자진해서 머리를 깎은 사람이 4백8명, 머리 깎기를 거부하여 가정에 통보된 자가 1백98명, 학교통보가 6명이었다. 대체로 경찰의 지시대로 머리를 깎았으나 일부 대학생과 예술가들은 경찰단속이 지나치다는 항의소동을 빚었다.
경찰은 이날 머리가 귀를 덮을 정도의 장발은 모두 불심검문으로 검거했는데 학력별로는 대학졸업자 4명, 대학재학 85명, 대학중퇴 9명, 고졸 1백47명, 중졸 1백88명, 국졸 2백35명이었고 고교재학생은 6명, 대학입시 재수생이 50명이 있었다.
경찰은 이날 단속기준을 (1)공개장소에서 신체의 전부 또는 중요부분을 노출하거나 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 (2)음악 감상 실에서 음탕한 가무에 도취, 주위를 시끄럽게 하거나 양속을 해하는 자 (3)지나친 더벅머리를 한 채 별다른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여 통행인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다방·당구장·다과점등 업소에서 장시간 좌석을 점거하여 나쁜 몸집·유희 등으로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자 등으로 돼있다.
경찰이 내세운 이들에 대한 처벌법규는 형법 2백45조(공연 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1조44호(신체노출), 27호(불안감·혐오감야기)등이다.
한편 치안 국은 29일 외국인 장발족에 대해서도 삭발을 권유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외국인은 입국시키지 않기로 했다.

<모두 어리둥절 사생활간섭 단역배우도>
해프닝 히피족이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경찰의 더벅머리단속은 아무런 사전경고나 유예기간의 마련도 없이 마구잡이를 했기 때문에 인권을 해친 사례마저 빚었다.

<보호 실서 항의소동>
이날 길에서 잡혀온 D대학의 임학과 2년 우현우군(21)은 경찰에서 설명을 듣고『의도는 좋으나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마구 잡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죄인처럼 윽박지르고 강제로 머리를 깎는 것은 인권유린』이다 고 항의했다.
이날 서울의 종로·중부·남대문 경찰서의 보호 실은 낮부터 초만원을 이룬 채『머리를 기르는 것까지 경찰이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침해가 아니냐』고 기세를 올렸다.

<직업 놓치게 됐다>
두상이 고르지 않아 머리를 길게 길렀던 이세기군(25)은『나와 같은 경우에는 억울하다』고 항의했고 영화 밤차로 온 사나이에서 단역을 맡았던 배우 김주삼군(20)은『예술가와 히피를 구분하라』고 소리치며 지금까지 8편의 영화에 ,깡패 역을 맡았던 것인데 머리를 깎아 아무 것도 못하게됐다고 울상을 지었다.
미군부대의 악사로 있는 홍모씨(25)는 신분증명서로 간신히 훈방되기도 했다.

<일시귀국 유학생도>
또 병사관계로 일시귀국한 미 포덤 대학교 경영과 3년 김의용군(22)은 모처럼 명동거리에 나왔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김 군은 머리를 깎겠다는 각서를 쓰고 강제삭발을 면했지만 히피가 단속을 왜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서 미국과 틀리는 고국의 조치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점점 기세 꺾여 삭발>
그러나 붙잡혀온 더벅머리들은 시간이 자꾸 흐르자 기세가 죽고 머리 깎기를 거부하면 즉심에 돌리겠다는 경찰의 으름장에 눌려 하나 둘씩 구내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한편 단속이 시작되자 서울시중에는 잘한다는 전화와 사생활 침해라는 전화 약 20통이 엇갈려 걸려왔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몇 ㎝까지 허용하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경찰에서 각서를 쓰고 풀려난 S대학의 김 모 군은『정식재판을 청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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