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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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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발족의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경찰당국은 느닷없이 장발족들에게 단발령을 내렸다. 2백여 명은 이미 경찰에 의해 두발을 깎이었다.
장발단속의 근거는 히피 풍과 해프닝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장발족들이 일률적으로 히피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히피족은 이른바 미국식 양적 문명의 소산이다.
프랑스의 시인 폴·발레리는 유럽의 문명을 영적인 것으로, 미국의 문명을 양적인 것으로 풍자한 적이 있었다. 양적이란 말은 혼(Soul)없는, 오로지 물질문명만의 추구를 비웃은 표현이다. 전후 50년대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상실의 세대(헤밍웨이의 말)를 넘어 비트니크에서 히피에 이르는 방황을 계속해왔다. 모든 것이 기계화하고, 문서화한 사회에서 능률 아닌 인간을 발견하려는 자유분방의 사상이 바로 이들을 보헤미언으로 만든 것이다. 인생방기, 마리화나에 의한 자기상실, 자연에의 향수 등은 이들이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두발은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고, 몸은 더럽혀 질대로 던져주고 사고는 자연의 계율에 맡기고… 그런 반 물질적 자연귀의의 모습이 바로 오늘의 히피·스타일로 나타났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새삼 이런 정신의 초토 위에서 미국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 일어나자고 외치기도 한다.
우리의 히피족은 근원적으로 이들과는 다르다. 히피라는 이름조차 당치도 않다. 엄밀한 의미에선 히피는 적어도 한국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히피 풍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 히피 풍을 시비할 근거는 더욱 희박하다. 히피 풍을 미적인 감각으로 보기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것은 주관적인 일이다. 그것을 당장 범법시하는 것은 히피 그 자체보다도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미니 선풍도 그만한 시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자유사회인 것을 새삼 실감할 필요가 있다. 북한사회에서 미니나 장발족이 산책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다.
해프닝 만해도 그렇다. 그것이 한 예술의 새로운 형식으로 클로스·업이 되었을 때, 그것이 도덕적이니, 비도덕적이니 하는 것은 비평가가 할 일이다.
그러나 단발령과 장발예찬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데릴라가 삼손의 머리칼을 깎아버리듯이(구약성서 사사 기), 그렇게 낙심천만한 탄식을 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문제는 단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먼저 시민의 자유의사에 호소하고, 구체적인 탈선행위에 대해 경고를 준 다음에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의 찌꺼기는 흉하고 보기 싫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은 누가 봐도 절로 미소가 솟는 것이 있었음직도 하다.
▲고침=27일자(일부지방 28일자) 본 난의 간호원 수련과정 최소 2년은 3년으로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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