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긴장」인식 차|박-애그뉴 마라톤 회담의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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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박정희 대통령과「애그뉴」미 부통령간의 서울회담은「선 현대화」와「선 감축」이라는 서로의 입장을 누그러뜨리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지 못한 채 문제 해결을 양국 대표자간의 군사 또는 정치 회담으로 넘기고 말았다. 주한 미군 감축이「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제기 된 후 한국 정부는『북괴의 오산에 의한 전쟁 도발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의 전투력 보강이 미군 감축에 앞서 이룩되어야 한다』고 내세우고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보장이 이룩되면 미국이 요구해온「감축」협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감축을 결행하려는 미국과 현대화를 먼저 관철하려는 한국의 입장을 조정키 위한 군사실무자 회담과 국방 각료 회담이 열렸지만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박-애그뉴 회담에서도 그랬지만 회담의 실질적인 진전을 어렵게 한 근본요인은 북괴의 전쟁 능력 평가와 이에 관련한 한반도에 있어서의 긴장 상태에 대한 양국의 인식도의 차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근본 문제에 대한 견해차이가 좁혀지지 않은데다「애그뉴」부통령의 극동 4개국 순방의 성격이나 재량권의 한계로 미루어 현안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어렵지 않았나 보여진다.
박 대통령은 회담에서 현대화를 위한 품목과 시간·계획에 관한 안을 제시했으며 전쟁이 났을 경우 미군의 개입 보장을 문서화해주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애그뉴」부통령의 반응은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의 감축 계획과 이를 지탱치 않을 수 없는 미국의 사정 실명 때문에 25일의 회담이 장장 6시간이나 걸리지 않았나 보여진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회담의 결론은『한국의 안전보강문제와 주한미군의 감축 문제에 관한 협의를 동시에 갖는다』는 것이었다.
「동시협의」의 양해는 우리입장에서 보면 일보후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금까지 현대화의 선행 없이는 감축에 대해서는 노의 조차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반면「애그뉴」부통령으로서는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동시협의 선가지 후퇴시킴으로써 그의 방한 목적은 부분적으로는 이룩한 셈이라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한국이 동시협의에 동의한 것은「애그뉴」부통령의 거듭된 대한공약의 재확인이 있었고 현대화 문제에 대해서도 성의가 잇다는 심증이 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심증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미국 정부가「애그뉴」부통령을 통해 현대화에 대한 언질은 주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될 협상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냈던 것으로 해석된다.
앞으로의 대미 절충안과 전략은 27일의 청와대 관계 장관회담에서 논의되었지만 당국자들은 군사 실무자회담에서 두 문제의 동시 협의가 이루어지면 어떤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고 비치고 있다. 군사회담에서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외교 채늘을 통한 문서화 협상이나 또 다른 정치 회담의 개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어떤 종류의 교섭에 의해서건 미국의 11월중간 선거전에는 타결점이 발견될 것이라는 기대를 일부에서는 걸고 있는 것 같다. <이억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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