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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력 뒤흔드는 위조수표|그 실태와 진짜 식별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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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상업은행 발행으로 된 1만원 짜리 가짜 보증수표 대규모 위조사건이 터진데 이어 서울·부산·대구·광주·목포 등 대도시에서 고액권의 위조 및 변조 수표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유가증권의 공신력이 땅에 떨어지고 신용 화폐의 유통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다. 당초 1만원 권 가짜보증수표 위조사건의 수사에 나섰던 경찰은 최영균(34·중구 용자동17의2)일당이 지난 7월 26일부터 3일 동안 성림인쇄소에서 만든 1만여 장의 위조수표가운데 깨끗한 6천8백88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중 2백19장을 서울시내에서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최를 검거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한편, 시중에 나돌고 있는 가짜수표를 거둬들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수사가 시작 된지 이틀만인 지난19일에는 5만원 권 가짜수표가 상은 서울역전지점과 충무로 지점 등에서 14장, 부산에서 7장, 대구에서 3장 등 모두 24장이 발견돼 경찰에 신고된 사실이 밝혀지고, 20일에는 또 제일은행 발행으로 된 1만원 권 2만원 권, 2만5천원 권, 5만원 권, 9만원 권, 20만원 권 등 6종류의 가짜보수가 서울·부산·대구 등지에서 모두 19장이 경찰에 신고됐음이 드러났다. 또 서울에서는 22만원권 한국외환은행 발행으로 된 변조 당좌수표가 발견됐고 광주에서는 조흥은행 광주지점 발행으로 된 37만원 권이, 목포에서는 제일은행 목포지점 발행으로 된 30만2천원 권 당좌수표가 각각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음이 밝혀졌다.
21일에는 국민은행 부산지점 발행으로 된 1만원 권 가짜수표와 조흥은행 충무로 지점 발행으로 된 10만원 권 가짜 수표까지 신고됐음이 드러나 문제는 의외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19일 하오 5만원 권 가짜수표가 1만원 권 가짜수표와 같은 손으로 만들어진 것인 지의 여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했으나 인쇄기술상 동일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 조직적인 유가증권위조 및 변조 범이 여러 조직으로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지금까지 가짜 수표를 사용한 범인들은 쌀·귀금속·시계·옷가지 등을 사고 나머지 거스름돈을 현금으로 바꾸며 가게 등에서 수표에 의심을 품는 눈치면 서영태(32·부산시 초량동370) 라는 주민등록증까지 보여 안심시키는 방법 등을 써 왔다는 것이 피해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 같은 범행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난달 28일쯤 부산에서도 몇 차례나 일어나 경찰에 신고 됐으나 경찰의 수사태만으로 범인을 잡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가짜보수를 만든 수법을 보면 1만원의 경우, 정교하게 손으로 그려서「오프세트」인쇄기로 인쇄한 뒤 상은 세운 지점장 대리 도장을 찍은 것이고 5만원 권도「오프세트」인쇄기로 인쇄한 것인데 글자 및 숫자 인쇄가 선명치 않다.
한국상업은행 관계자들에 의하면 가짜 수표는 지점장 도장이 진짜와 다르고 수표 상단에 새겨진「한국상업은행」이란 표시가 들어있지 않아 수표를 별로 취급하지 않은 사람도 당장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진짜 자기앞 수표는 지점장 도장이 동그라미 안에「세운」「지점장」「대리」란 글자가 세 줄로 새겨져 있으나 가짜의 경우 세 줄은 마찬가지로 그어져 있되「세운」「지점장」 「××」로 새겨져 있어 둘째 행 글자와 셋째 행이 전혀 틀린다는 것이다.
이번에 시중에 나돈 위조수표는 수동식「오프 세트」를 사용, 노랑·파랑·검정 색 등 3색도로 정교히 인쇄되어 전문가인「미쓰비지」서울지점 창구에서 한꺼번에 66장이 입금되어도 진짜로 속은「난센스」를 자아냈다.
위조 범들이 대량으로 가짜수표를 만드는 것은 ⓛ무늬나 글자가 간단해서 인쇄하기가 쉽고 ②발행자의「사인」이 육필이 아닌 고무도장으로 찍히고 ③각 은행마다 규격이나 모양이 달라 일반인이 속기 쉬우며 ④고액수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하루 평균 42만여 장 1백14억 원의 보증수표가 사용되고있는데 각 금융기관은 수표의 규격과「디자인」·글씨체·색채 등을 임의로 선택하여 발행한다.
한국 조폐공사는 각 금융기관에 대해 보증수표의 인쇄를 조폐공사에서 하도록 권유하고 있으나 일부 은행은 민간인쇄업자에게 인쇄를 맡기고 있어 인쇄소로부터 완전한 수표용지의 유출사고도 일어나고 있다.
은행감독원은 가짜수표사고를 줄이기 위해 금융단 협정으로 수표인쇄를 엄격히 규제하고 고액수표에는 발행자의 친필「사인」을 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진짜 자기앞수표는 표 상단에 가로 6㎝, 세로 5㎜의 파란 직사각형안에 한글로「한국상업은행」이란 흰 글자가 찍혀있으나 가짜는 이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가짜 수표의 경우 주로 은행 문이 닫혀 수표 조회가 불가능한 하오 8시30분 이후의 밤에 많이 사용되고 있고 ②사용수법이 유흥비나 또는 선물용이라 해서 물건을 골라 거스름돈을 바꿔 가는 등 수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가짜수표나 변조수표가 널리 나돌게된 것은 이제까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소재수사를 한다는 핑계로 신고만 받아놓고 어물어물하다가 경찰에 기소중지의견으로 송치해 버리는가 하면 또 이서 인이나 피해자의 관할 경찰서로 이첩해 버리고 수사를 포기하는 것을 예사로 해 왔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태에서 이번 사건과 같은 가짜수표의 대량위조는 경제조직의 기저를 이루는 「신용」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가뜩이나 전근대적인 우리의 유통구조를 한결 더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금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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