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의의 선거「이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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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은 내년도 선거 전략을「통일여건 조성」이란 명제로 집약, 21일 중으로 선거에 관한 기본 계획을 완성하여 내주 초에 확정 할 것이라 한다. 이 계획에 따르면 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8·15경축사에 따라 70년대 후반기를 통일 성취의 시기로 잡고, 70년대 전반기를 통일준비시기로 규정, 이 기간동안 예상되는 북괴의 도발을 막고 국력의 계속적인 신장을 위해서는 온 국민의 역량집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삼아 모든 전략을 깔 방침이라고 한다.
한편 신민당에서도 박대통령의 8·15경축사에서 밝힌 통일방안이 무엇인가를 질의할 것이라 하며,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한「안보백서」에서 통일논의를 위한 범 국민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할 방침이며, 남북간의 서신교류·기자교류·체육인 교류 등을 비롯, 남-북간의 직접 대화까지도 연구해 볼 것이며, 선거 때에 구체안도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여-야당이 박대통령의 8·15구상을 기점으로 이처럼 활발한 통일논의를 전개하게 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 동안에는 민족의 여망이요, 헌법의 요청인 통일논의가 사실상 금기되어 왔고, 오히려 억압되어온 터에, 박대통령의 8·15구상을 계기로 여-야당이 진지한 통일방안을 수립하려고 한다는 것은 자연의 추세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만 통일논의에 대해 항상 소극적인 태도만을 취해왔던 정부가 이에 관한 논의를 먼저 터놓은 느낌을 주고있는 요즈음, 여야당이 통일 방안을 다듬는 것은 환영 할만 하나, 과연 이를 선거「이슈」로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엄격한 선행 조건을 붙여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8·15 구상을 내외에 선포한 뒤 1주일이 지났으나, 북괴는 아직도 이에 대해 한마디의 반응조차 나타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판국에서 여야당이 다투어 통일전략을 내세워 선거「이슈」로 다루는 경우, 통일논의는 불협화음만을 높게 하여 북괴가 노리는 국론분열이나 가져오고 현실적으로는 아무 소득 없이 우리의 국익을 양보하려는 주장마저 나와 이적의 결과를 야기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서독에 있어서도 57년 선거당시 과거의 통일 정책에 대한 비판과 외교정책 전반에 걸쳐 활발한 토의를 전개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나, 그 결과 국론통일은커녕, 국론분열만 일으켜「매카디」적 냉전의「무드」만 팽배했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통일전략이나 외교 전략에 대한 과열한 선거논쟁은 어느 나라에서이고 조금도 국익에 보탬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장차 통일이 이루어 질 때까지의 과도 정부라는 것을 못박아놓은 서독과는 달리 처음부터 완전국가의 권위를 규정하고 휴전선이북에도 주권이 미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있는 우리헌법체제 아래서의 통일 논의는 자칫 잘못하면 범법자를 양산할 가능성 마저 없지 않음을 주의해야할 것이다.
여당은 내년 선거의 최대 과제를 도시지지표의 확대에 두고 도시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또 젊은 층의 동조를 얻기 위하여 통일 방안을 몰고 나오는 모양이나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형법·위법의 개정 전에 부질없는 통일 논의를 함부로 하는 경우, 청소년들의 앞지른 통일「무드」를 어떻게 선도할 수 있는지 극히 우려되는 것이다.
또 야당이 제안하리라는 통일에 관한 범 국민협의체의 구성은 일단 그 취지를 찬성 할만 하나, 이는 국회내의 기구나 통일원의 범 국민적 협의기구화로도 가능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야당이 통일에 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경우, 자칫하면 여당에 앞서 북괴와의 직접 대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바, 이는 국민의 감상적 통일론을 조장, 이 때문에 빚어질 지나치게 고조된 통일「무드」는 국민의 대공의식마저 마비 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요컨대 여-야가 통일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되, 그것을 선거 「이슈」로 통일방안을 내거는 것은 삼가 해 주기를 바란다.
통일 여건의 조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생고의 해결, 부정부패의 근절 등 내정의 개혁이 필수적인바, 선거전「이슈」로는 정정당당하게 경제문제와 사회복지의 향상 문제를 들고 나와 정책적 대결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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