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의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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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동토론>
황산덕 교수 <법학 성균관대>
김영준 교수 <정치학 국방대학원>
김하룡 교수 <정치학 고대>
박봉식 교수 <국제 정치학 서울 문리대>
손제석 교수 <국제 정치학 서울 문리대>

<차례>
(1)어프로치
(2)외적 요건
(3)북의 상황
(4)내적 문제
(5)전개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문제에 관한 「8·15선언」은 그간 70년대의 위기설이 거론될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도사리던 불안을 몰아내고 전진적이며 주도적인 자세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통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괴는 무력적화통일을 추구하여 6·25 불법 남침에서 실패하자 평화위장전술로 나와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중립국 감시단에 의한 남북한 총 선거안을 들고 나왔으며 4·19혁명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한 연방안을 비롯하여 소위 민족해방투쟁전략을 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북괴는 기본적으로 무력통일을 추구하면서도 평화통일을 위장하여 정세의 변동에 따라 자체의 전력축적과 남한에 대한 적화조건의 조성을 획책해왔다. 이것이 이른바 그들의 기지창설전략인데 북녘을 「혁명기지」로 구축하면서 소위 「결정적 시기」에 한반도를 적화 통일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북괴가 평화통일공세를 취할 때마다 그것이 전략·전술적으로 위장된 것임을 알면서도 항상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또 통일논의를 「터부」시 하게 된 것은 6·25남침과 그후의 계속적인 도전에서 오는 피해망상 의식과 북괴에 대한 과대평가에 우리도 모르게 지나치게 사로잡힌 데 큰 요인의 하나가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45년 북한주둔 소련군의 비호 하에 괴뢰정권을 수립한 북괴는 6·25 남침 후 소련과 중공의 양단사이에서 동요해왔다. 즉 45년에서 6·25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대소일변도로 기울어졌다. 6·25에서부터 중소분쟁이 노골화되는 61년께 까지는 6·25를 계기로 부식된 중공의 영향력과 소련의 그것과의 경합 속에서 신음했다.
62년께부터 소련의 원조중단에 대한 반발로서 대 중공관계를 밀착시켜 65년에 이르기까지의 중공의 반소 반수정주의 투쟁에 가담했으나 중공에 대한 원조기대가 실속이 없게되자 다시금 65년 초부터는 친소노선을 걷게되었다. 이와 같은 동요가운데 북괴는 종국적으로는 중소 어느 쪽에도 전적으로 의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들 나름의 입장을 모색하기 위해 66년 8월에 소위 「자주노선」을 선언했다. 그리고 근자에 와서는 66년이래 끊어졌던 중공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지난 2월에 북괴 대사가 북평에 부임하고 3월에는 중공대사가 평양에 부임했다.
이와 같은 북괴의 동요과정은 우리가 안고 있는 이상으로 북괴자신이 심각한 약점 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것은 북괴가 지닌 몇 개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첫째로 중소 양단사이에서의 북괴의 동요는 두나라 중 어느 쪽도 북괴로서는 확고한 지원세력으로 믿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66년에 있은 7개년 계획의 3년 연장은 그의 파탄이 소련에 의해 어느 정도 보완되었다고는 하나 내적으로 결정적인 타격 속에 있을 것이다. 세째로 가중한 군사비 부담 속에 북녘동포들이 지탱해나가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네째로 그들은 「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를 구호로 40여만명의 정규군과 더불어 1백 30만명의 노농적위대를 조직하여 전쟁 공포 속에 주민을 휘몰고 있으나 이에 대하여 우리 남한은 이미 2백만명의 향토예비군을 조직했다. 그리고 다섯째로 중공을 제외하고 전 공산권에 파급되고 있는 자유화물결에 북괴가 한사코 외면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시기만 언제든지 간에 그것이 북한땅 속에도 침투하게 될 것이다.
이들 북괴 자체의 약점은 남한의 그간의 상대적인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에 의하여 더욱 가승된다. 북괴가 66년이래 사상에서의 주체성, 경제에서의 자립성, 정치에서의 자주성, 그리고 군사에서의 자위성을 내세워 자주노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본다면 군사력 강화에 대한 내적인 곤란성과 외부적인 지원에 대한 기대의 좌절감을 반영하기도 한다.
우리는 적을 올바르게 평가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안에 떨기에 앞서 적의 약점을 발견하여 조장시키는 반면에 우리의 강점을 발전시키며 자체역량을 강화해야만 한다.
박 대통령의 「8·15선언」은 항상 수세에 섰던 우리의 과거의 안타까움에서 본다면, 선제로써 우리의 자신을 고시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가일층 국민적 분발의 원동력이 되어야할 것이다. 국제긴장이 완화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오늘날의 추세에서 본다면, 더욱이 미 중 관계가 접근하게 된다면 아세아의 긴장완화에 대해 북괴가 항상 도전세력으로서 이에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북괴가 어떻게 나올 것이냐는 두고 보아야할 문제이지만 이러한 추세에서 본다면 북괴는 앞으로 날이 갈수록 우리의 「선의의 경쟁」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토론 참가자중 북괴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음을 부기 함). 어쨌든 북괴는 이를 외면하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며 받아들이면 내적 위기를 맞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차제에 더욱 중요한 것은 감상적인 통일논의나 통일논의의 사상논쟁에의 원용을 다같이 배격하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박 대통령은 ①북괴가 무력통일이나 폭력혁명의 포기를 선언, 행동으로 실증하고 또 이에 대해 우리가 인정할 수 있어야된다는 것과 ②한국의 민주·통일·독립과 평화에 관한 「유엔」의 권능을 수락할 것을 조건부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전기를 맞이하여 민족 지상과업인 민족통일의 추구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대 국민 여론지도와 국내적 제반체제의 발전적인 정비가 선행되어야한다.<대표집필=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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