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해빙에 때맞춘 자신|"유엔 테두리"… 조건 엄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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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통일기반조성의 접근방안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8·15구상」은 국토통일문제에 관해 건국이래 어떤 정권도 시도해보지 못한 능동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광복25주년에 때를 맞추어 공포된 박대통령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접근구상은 국내외적 여건의 제약 때문에 지극히 신중을 기할 것이긴 하지만 민족적 과제를 풀기 위한 구실의 탈피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모멘트」가 아닐 수 없다.
통일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기본 선은 「유엔」의 감시 하에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안이 20여 년을 지나면서도 현실적으로 아무런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국력증강으로 북괴를 압도함으로써 통일·문제에 대한「이니셔티브」를 잡자는 것이 박대통령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제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면 국민 총생산 면에서 북괴를 4배 가량 앞서고 국력을 바탕으로 한 주체역량에 곁들여 국제적 여건이 성숙되고 자유화물결에 의한 북한의 사회체제가 변질될 것이 예상되므로 통일문제가 본격화될 시기는 70년대 후반이라고 박대통령은 보았던 것이다.
이 같은 내적 여건 외에, 냉전체제의 재편, 중공·소 분쟁으로 노정된 「이데올로기」의 퇴색이라든지, 동독과의 대화와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에서 볼 수 있는 서독의 해빙노력 등 일련의 국제정세에 조금이라도 호흡을 맞추자는 것이 이번 「8·15구상」의 또 하나의 기조인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8·I5선언」은 언젠가 본격화할 통일논의의 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본격적 통일논의에 임하는 우리의 자신에 찬 자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8·15선언」에서 북괴에 제시된 전면적인 무력포기와「유엔」의 권위·권능인정이란 두개의 선행조건은 곧 그들의 존립자체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일성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선언은 그 자체가 통일의 실마리를 푸는 방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선언을 통해 보여준 통일에 대한 능동적자세가 국내외에 미칠 영향은 아주 클 것이 분명하다.
박대통령의 이번 제의는 「유엔의 테두리」라는 종래의 기본선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일정책의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전환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선언을 계기로 정책전환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의 단계적 개정과 신축성 있는 적용 등을 통해 통일논의를 양성화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는 상당한 시간과 엄격한 조건충족이 있은 후에야 있을 것이다. 박대통령은 제시된 선행조건에 관해 (1)북괴가 내외에 그 수락을 선언하고 (2)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며 (3)그 실천을 우리가 확실히 인정할 수 있고 (4)「유엔」에 의해 명백히 확인돼야 한다는 엄격한 점과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충족이 이루어진다면 지금까지 금기되었던 남북의 교류나 접촉 등도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선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8·15」 선언은 「유엔」에서의 한국문제토의를 유리하게 이끌고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이미지」에 「푤러스」 요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8·15선언」은 다음선거의 최대「이슈」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억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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