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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 플리마켓 셀러로 참여해보니

중앙일보

입력

1 셀러로 나선 정심교 기자가 아기 손님에게 원숭이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2·5 플리마켓에 나온 가지각색의 물건들. 3 지난달 24일 이태원의 한 바에서 열린 플리마켓 현장. 4 한진 기자가 매출을 정산하고 있다. 한 기자는 이날 8만4000원의 매상을 올렸다.

플리마켓(flea market). 소위 ‘벼룩시장’이다. 중고물품을 저가에 사고파는 장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셀러’들은 주로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어졌지만 쓸만한 물건들을 내놓는다. 기존의 플리마켓은 단순히 쓰던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플리마켓은 ‘사고 파는 공간’에서 ‘놀이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매상을 올리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한 번도 물건을 팔아본 적 없는 기자 2인이 셀러로 참여했다. 좌충우돌 셀러 체험기다.

첫 단계는 ‘폭풍 검색’이었다. 우선 주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을 인터넷에서 샅샅이 뒤졌다. 매주 또는 매월 열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곳도 많았다. 그러다 이태원 경리단길의 작은 바(bar)에서 여행을 주제로 한 플리마켓이 8월 24일 열린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기자 일행은 행사 전날 집안부터 뒤졌다. 여행 추억이 담긴 물건 중 잘 안 쓰는 녀석들을 골라 담았다. 당일 낮 12시. 행사가 열리는 지하 바(bar)에 도착해 매대에 물건들을 부랴부랴 꺼내놓았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힙합음악이 ‘둥둥둥둥’ 스피커를 흔들며 흘러나왔다. 6개 매대에서 셀러 10여 명이 판매할 물품을 이리저리 바꾸며 배치했다. 무더위에 목 마른 셀러들은 한 손에 시원한 맥주를 들며 손님 맞을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행사가 시작된 오후 1시. 한진 기자는 친구들과 홍콩·일본을 여행할 때 사용했던 10만원 상당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전시용으로 올려놨다. 옛 남자친구의 선물이라는 슬픈 사연이 담긴 카메라다. 구매를 원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얼마냐’는 질문에 ‘얼마에 팔아야 하냐’고 되물으며 ‘초짜 셀러’ 티를 내고 말았다. 일산에서 온 안치선(30)씨가 내민 5만원에 운명이 바뀌었다. 그는 “중고품이지만 새 것 같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 기분 좋다”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는 중국 호남성 장가계(張家界)에서 사 온 원숭이 인형을 내놨다. 장가계 기암절벽에는 유독 원숭이들이 많이 사는데, 그 덕분에 원숭이 인형이 불티나게 팔린다. 인형 버튼을 ‘딸깍’ 내릴 때마다 원숭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심벌을 친다. 친구와의 여행 추억을 담은 하나뿐인 물건이라 가격을 매기기 힘들었다. ‘이 정도면 사겠다’ 싶어 5000원으로 책정했다. 원숭이 인형을 이용해 “골라 잡아~”라고 외치며 흥을 돋웠다. 힙합음악과 리듬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잠시 후 네 살배기 아이의 눈빛이 인형에 고정됐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달라고 졸라댔다. 심지어 깎아달라며 기자에게 연달아 윙크를 날렸다. 결국 1000원 깎아 4000원에 팔았다. 장가계 특산품 머플러를 3000원에 산 유희숙(여·43)씨는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데 싸고 독특한 물건이 많고 흥겨운 음악도 나와 즐거웠다”며 웃었다.

이웃 셀러의 물건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트위터를 통해 이번 플리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을 알고 셀러로 참여한 김수희(가명·여·25)씨는 커피원두 포대자루로 만든 에코백을 팔았다. 자원도 재활용하고 돈도 벌어 일석이조라고.

이날 최고 인기셀러는 스위스정부관광청 직원들이었다. 이들의 테이블엔 스위스 전통음식 퐁듀를 만들 수 있는 요리기구를 비롯해 여행지에서 수집한 쥬얼리와 향수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했다. 셀러로 참여한 김지인 스위스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여행지에서 욕심 내서 샀지만 막상 집에 오면 쌓아두는 물건이 많다”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런 물건을 되팔 수 있는 플리마켓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소가 이태원인 만큼 외국인 셀러도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국 온 지 4년 된 조이야(여·30)씨는 “곧 런던으로 떠나 필요없는 물건들을 처분하려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안 입는 옷가지 5만원어치를 팔았다. 근처에 사는 큰 개도 놀러 왔다. 한 셀러가 팔려고 내 놓은 페도라를 씌워주자 모델인양 한곳을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다. 순식간에 ‘차도개(차가운 느낌의 도시 개)’로 변신하자 여기저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곳 셀러들은 대부 분 여행매니어들이다. 이 행사는 여행매거진 기자 서다희(여·34)씨가 6회째 열고 있는 여행 테마의 플리마켓이다. 셀러들은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트위터의 행사 안내글 등을 통해 지원했다. 방문객들은 기획자의 SNS 혹은 현장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경우가 대다수였다. 행사 테마는 ‘여행’. 기존 플리마켓은 특별한 주제 없이 중고물품을 저가에 사고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여행이나 리빙 등 특정 주제를 정해 해당 매니어들을 불러 모으는 소규모 플리마켓도 늘고 있다.

낮에 잠자는 바를 나눔의 장으로 활용토록 장소를 제공한 김영수 도조라운지 대표는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공간이 아닌 문화를 공유하는 곳으로 활용하고 싶었다”며 뿌듯해했다. 이날 한진 기자는 8만4000원을 벌고 팔찌 등을 2만원에 구입했다. 정심교 기자는 9만원을 벌어 명품시계와 선글라스 등을 7만 6000원어치 구입했다. 남은 물건을 싸며 다음 플리마켓을 기약했다.

<글=정심교·한진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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