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전주 합죽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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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채는 예부터 우리 생활 속의 여름철 필수품이었다. 또한 풍류의 멋 부림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 부채가 지금은 「에어컨디셔너」와 선풍기에 밀려 빛을 잃어가고 있다. 다만 부채중의 부채라는 합죽선만이 모양의 진귀함 때문에 외국손님을 위한 선물용으로 애용되고, 둥근 방구 부채가 개량부채라 하여 광고 선전용으로 모습을 자랑해 오고있다.
경국대전을 보면 경공조에 첩선장 4인, 전라도에 선자장 2인, 경상도에 선자장 6인을 둔 것으로 이조 때만도 곳곳에 부채일이 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제 부채라 하면 전주 합죽선과 남원 개량선이 특산물이 되고 말았다.
전주시 중앙동 3가 72 전주우체국 맞은편의 무궁화공예사는 17년째 한 자리에서 부채만 팔아온 집. 안 주인 구기현씨(51·여)는 4평 남짓한 가게 안에서 섭씨 30도의 무더위를 부채바람으로는 못 이기겠던지, 선풍기 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손님을 맞았다.
『1년에 3만개는 팔아요. 요즘은 싸구려보다 고급품을 많이 찾지요.』 부채가 고급일수록 「액세서리」화 되어진 탓일까. 합죽선·태극선 등은 3. 4년 전부터 차차 더 잘 팔리는 추세라 했다.
그러나 전주 합죽선의 연평균 생산량은 예나 지금이나 2만개 안팎. 기술자가 통틀어 15명 정도인데다 하나하나 손으로 다듬어지는 것이라 한사람이 많아야 2천개 정도 만들면 중노동이다.
전주 토박이들은 부채기술자의 이름들을 훤히 외우고 있었다. 으뜸으로 손꼽히는 문준화옹(62)은 일손을 놓은 지 오래됐고 신진으로 엄주원(33) 이성만(47) 이기동씨(41) 등이 이름 높았다. 이들이 모여 사는 인후동은 부채단지로 조성되고 이제는 우리나라에 유일의 합죽선고장.
엄주원씨는 한 자루의 합죽선을 만드는데 1백 일곱 차례의 손길이 간다면서, 『1백 8번째 손에 쥔 부채주인은 부채바람으로 백팔번뇌를 씻게된다』고 했다. 합죽선의 공정은 백중을 전후한 음력 7월께 대를 베면서 시작된다. 반월형 환도로 목살과 끝살을 깎고, 목살은 대껍질만 남겨 부레 풀로 맞붙여 합죽 하는데 오목한 목깎이가 가장 어려워 일본 사람들이 몇 차례 배우려했으나 실패했다는 것.
합죽이 끝나면 「낫칼」로 질을 내고 변죽을 만든다. 쇠뼈를 잿물에 삶아 표백하여 부골을 하고 가피, 그 다음에 등을 얹고 뾰족한 인두로 낙죽 하면 속살과 끝샅을 잇는 가운데 지목을 따고 가장자리를 휘게 만들어 부챗살에 도배하기까지 족히 1백일이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죽선도 부채목 아래의 부리모양에 따라 승두·어두·사두로 나뉘고, 변죽에 흑문이 있으면 반죽 등 외각·내각·원목·채각·소각·유경·무경·광변·협변 등으로 구별되었다. 부챗살이 삼십시 이내면 협변, 오십시 쯤이면 광변, 선면에 그린 그림도 갖가지였다.
사군자·산수·버들개지·호접·도화 등 그림에 따라 붙여지고 쓰임새에 따라 불러진 부채만도 방구 부채와 함께 27여 종이 전해지고 있다. 파초선·태극선·연섭선·백우선·청선·홍선·소선·일월선·무선·금선·아홍선·팔덕선·오엽선·공작선·송선·피선·모선·초선·포선·칠선·흑선·유선·백첩선·백습선·접선 등이다.
부채 값은 그림 값이 절반이라지만 합죽선의 경우 개인별 이득이 무척 높은 것이었다. 2천 개를 만들 때 생산원가는 댓 값 13만 8천원, 부레 풀 값 1만 7천원, 쇠뼈 3천원, 그림 값 보통 3만원, 지대 1만 1천 5백원 등 모두 20만원 안팎으로, 넘겨주는 값을 대·중·소선 구별 없이 3백 원으로 쳐 모두 60만원 만 받으면 1년에 40만원은 남는다고 했다. 올해는 KAL에서 선물용으로 5천 개나 주문했다면서 그래도 부채의 멋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 주었다.
남원의 개량 부채는 올해 4백만 개를 생산, 비록 한 개에 2원씩 떨어지는 이익금이라지만 3백 70여 가구의 부채종사가구에 모두 8백여 만원의 순 수입을 올려 농가 부업치곤 대단한 실적을 올렸다. 작년 한해 수출된 것만도 2만 5천「달러」 어치.
비록 문명의 이기에 밀려 났다지만 부채는 역시 또 다른 구실로 여름의 풍류를 지녀주고 있다.
글·백학원 기자
사진·이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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