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양곡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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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시의 양곡행정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쌀값 파동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며 유통과정에서의 변혁이나 개선도 없다. 쌀장수들은 예부터 사용해오던 되와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고객들의 눈을 끄는 「쇼·윈도」나 별다른 「서비스」도 없다.
오히려 됫박 속이기가 일쑤고 정부미를 일반미라고 속여 엄청난 폭리마저 취하고있다.
상인들의 이 같은 횡포와 가격파동은 결국 빈곤한 양곡행정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서울시의 양곡행정은 겨우 양곡수급계획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5백만 서울 시민의 하루 양곡 소비량은 2만 5천가마. 1년 동안 8백 28만석을 소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서울시 자체 생산량은 겨우 14만석으로 전체시민의 6일간 식량밖에 안 된다. 변두리 전답마저 차츰 택지로 바뀌어 생산량은 줄어들고 있다.
소비구조를 보면 8백 28만석의 79.6%인 6백 63만 7천석이 식량용이고 가공공업용이 14.2%, 죄수용 관수용이 1.6%, 기타 4.6%.
양곡공급은 일반미 반입량이 연간 2백 44만 7천석으로 27.7%이고 정부 조절미가 43.3%인 3백 50만석, 도입양곡은 1백 89만 8천석으로 23.3%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 공급량의 72.3%가 정부양곡으로 양곡가격 등 조작의 「헤게모니」가 당국에 있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러한데도 가격은 7천여 쌀 소매상들의 손으로 조작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쌀값 파동이래 서울시는 매일 2만 8천 가마의 쌀을 방출하고 있다. 일반미 하루반입량 1천∼1천 2백가마 등을 합하면 서울시민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 4천 가마 이상이 남아돌고 있다. 이러한데도 쌀값은 여전히 안정되지 않고 쌀이 달리고 있으며 소매상들의 가격위반행위, 양곡은닉, 전매행위, 정부미 재 도정행위 등이 빈번하다.
이러한 원인은 소매상들이 싼 정부미를 일반미라고 속여 시중보다 비싼 교외로 대량 반출하고 있고 잦은 가격파동으로 시민들의 가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소매상들은 정부미를 다시 도정하여 일반미라고 속여 1가마에 7천원씩 받고 있다. 시중에 나돌고있는 쌀 가운데 진짜 일반미는 28분의 1밖에 안 되는데도 소비자의 95%가 일반미를 사먹고 있다. 결국 소비자들의 90%이상이 정부미를 일반미로 잘못 알고 1가마에 1천 3백원씩이나 더 주고 속아 사고있는 셈이다.
이처럼 소매상들의 횡포가 심한데도 서울시의 단속실적은 보잘것없다. 올해 들어 적발한 건수는 겨우 6백 58건.
서울시는 단속이 부진한 것은 정부미와 일반미의 구별이 어렵고 손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일반미로 속지 않고 사는 도리밖에 없고 일반미만 찾는 일종의 허영심을 없애야 한다고. 서울시가 가격파동과 소매상들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에서 탈피하자면 2중 곡가제, 쌀 전면통제 등 정부차원에서의 근본적인 양곡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분식 장려책도 다시 검토할 때가 왔다. 밀가루 자급량이 23%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에서 당장 내년부터 미국의 양곡원조가 끊기는데 대비한 분식문제의 해결방안도 시급하다.

<이원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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