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해방에서 환국 까지|김을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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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친왕은 생각하였다.
『그렇다.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만 한 줄 쓰여지고 말 자기의 생애.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을 위해서 일할 자리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물론 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전하!』
바로 그때 방자 부인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옆으로 왔다.
『·····. 』
고개를 돌리는 영친왕을 뵙고 부인이
『전하, 저 때문에 너무 번민하실 것은 없어요.』
라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니 영친왕은 가슴이 막히는 듯 하였다. 그리하여 방자비가 한없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방자! 그게 무슨 소리오. 나는 아무것도 번민하고 있지 않소. 그리고 번민을 한대도 방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또 방자 때문도 아니오.』
『·······.』
영친왕을 쳐다보는 방자 부인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렀다. 영친왕은 가만히 방자 부인의 손을 잡고
『왜 울우? 무어 울 것은 없지 않소.』
그보다 좀 나은 표현이 있으련만 도무지 말이 잘 되지를 않았다. 거기에 아들 구가 들어왔다. 『전쟁은 이제 끝났지요?』라고 묻는 천진난만한 아들 구를 보고 영친왕은
『그래, 전쟁은 끝났다. 평화가 왔으니까 이로부터는 마음놓고 공부를 할 수 있을게다』라고 대답을 하고 「앞으로는 이 애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방자! 인젠 쓸데없는 일로 마음을 썩힐 필요도 없게 되었구료.』
『그렇지만, 민족문제는 어떻게되는 겁니까?』
방자 부인은 아직도 마음이 석연치 못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민족에 맡겨 둡시다. 모든 것은 때가 해결해 줄 것이오. 평민이 된 나에게까지 그런 문제가 짓궂게 따라다니지는 않을 터이니까….』
영친왕은 이렇게 힘차게 말씀하고 방자 부인과 구에게 손을 내밀며
『자아! 인제는 우리들 세 사람만의 세계가 된 것 같군? 왕위에서 해방되어 아주 마음이 시원스럽소. 방자! 아무것도 걱정말고 힘차게 살아갑시다.』라고 말씀하니 방자 부인은 영친왕이 천만무량의 감회를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억지로라도 명랑한 표정을 지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촌도하고 의자에 몸을 던진 채 목을 놓고 울었다.
방자 부인은 해방 전후의 경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우공이 「히로시마」(광도)에서 원자탄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이우공 비와 두 아들이 서울에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일 후인 8월 12일에는 재경 각 황족과 왕공족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궁중으로 참내하라는 급한 연락이 있어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무조건 항복」의 소문이 역시 사실인가 싶어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집 어른의 이야기로는 그 날 궁전 안 깊숙한 지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시종도 데리지 않은 폐하께서 혼자 초췌한 모습으로 나오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 8월 15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천황제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여 천황과 관계되는 황족들이 다 각기 자기들의 앞날을 생각하는 그 불안이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경우는 더 한층 절실한 것이 있었습니다.
「카이로」 선언과 연합군에 의해서 조선은 곧 해방 될 것입니다.
그런 날에는 집 어른의 몸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나와- 또 열네살난 구는?…·
영친왕과 결혼한 지 25년-
서로 사랑해오면서 또 조선왕비로서도 대과 없이 지내왔다고는 하지만 처음에 두렵게 생각했던 정략 결혼이 이제 와서 노도처럼 닥쳐오는 것 같아 나의 불안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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