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부진 타개의 길 연 시향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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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경수씨를 맞아 1백62회 정기 연주회 (20일 서울 시민 회관)를 가진 시향은 이제 정력과 의지를 가다듬어 새 출발을 기약하는 듯 사뭇 믿음직스럽다.
유능한 지휘자를 만나기만 하면 관성을 벗어날 줄 아는 시향 이기에 어떻게 보면 그들이 갈망하는 지휘자상의 「패턴」이라 할 원경수씨를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또 이러한 바람이 이뤄진다면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풍부한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시향이 아닐까.
미국에서 수업중인 피아니스트 김덕랑양의 『황제』 협연이나, 잠시 귀국한 김병곤씨의 교향시 『낙동강』의 초연, 거기에 미8군 밴드의 대조를 얻은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1812』는 근래에 드문 열광을 받아 마지막 부분인 장엄하고 화려한 승리의 라르고를 「앙코르」 연주하는 등 이 한 여름밤의 음악회는 관객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또 이 서곡에다 편리하게 국악기 편경을 사용한 것 역시 뛰어난 기지가 아닐 수 없다.
김덕랑양의 낭랑한 「터치」는 이슬처럼 맑고, 신선하다가도 제법 심각할 줄 아는 기를 지니긴 했지만 아직 작품의 깊은 내면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소리가 심화되지는 못했다.
이번 무대의 「히로」 김병곤씨의 『낙동강』은 「스토라빈스키」에의 짙은 향수를 배경으로 오히려 한국적인 내용을 서양의 기법으로 미화시킨 정신의 총화라 하겠다. 보수적인 사고에 「에고」가 뚜렷한 표현 수단으로 사용했으면서도 공감의 폭을 넓힌 이곡은 내적으로 개성이 강한 음 요소들을 고차원의 방법으로 축적시켰다가 의식적으로 그것의 자리를 옮기면서 비 묘사적인 수법으로 전개했다. 선 하나 하나에까지 공을 들인 원열미에 새삼 매력을 느낀다.
또 이 작품은 부진한 우리 창작계에 착실한 길잡이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새 지도자를 만나야하는 시향으로서는 이 시점을 결정적인 조약대로 삼고 보다 힘차게 전진해야 할 것이다. <김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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