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루한 삶, 제정신으로 어찌 견디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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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호 28면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1953) 미국 리얼리즘 연극을 확립한 최고의 극작가.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탔고, 1936년 미국 극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폐병으로 요양하던 중 스웨덴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에 끌려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하버드대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1956)는 작가가 사후 25년 동안 발표하지 말라고 한 작품이다. 오닐은 아내에게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그만큼 작가 자신의 아픈 가족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것,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혹은 영화배우로 레드카펫을 밟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돌아보면 누구나 한 번은 남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퇴락하여 누구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씁쓸하게 술잔을 들게 된다. 첫 잔은 현재의 남루한 모습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쓰디쓰지만, 한잔 두잔 들어가면 술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에게 위대했던 과거 그 시절의 희열과 행복을 선사한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42> 음주욕

이렇게 술은 우리를 에덴 동산처럼 아름다웠던 과거로 데리고 가는 최고의 묘약이다. 여기 아버지와 두 아들, 그리고 심지어는 어머니마저 묘약에 취해 살고 있는 가족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보자.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이렇게 짙은 술 냄새를 풍기고 있다.

티론: (…) 내가 오셀로 역을 하던 첫날 그분이 극장 지배인한테 뭐랬는 줄 아니? “저 젊은 친구는 나보다 오셀로 역을 더 잘하는군!” (자랑스럽게) 당대의, 아니 불후의 명배우 부스가 말이야! 그건 사실이었지! 그때 내 나이 겨우 스물일곱이었어! 이제 돌이켜 보면 그날 밤이 내 배우 인생의 정점이었지! 원하는 곳에 서 있었으니까!

에드먼드: (…) (술기운에 수다스러워져서) 아버지께서 인생의 정점 얘길 하셨으니 제 인생의 정점들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까요? 다 바다와 관련돼 있어요. 우선 하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스칸디나비아 범선을 탔을 때였어요. 무역풍이 불고 보름달이 떴었죠. 그 배는 14노트의 속력으로 가고 있었어요. 전 뱃머리 사장에 누워 고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제 아래로는 물거품이 일고, 위로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돛들이 높이 솟아 있었어요. 전 그 아름다움과 노래하는 듯한 리듬에 취해 한동안 몰아지경에 빠졌죠. 인생을 다 잊은 거예요. 해방이 된 거죠!

늦은 밤 여름별장에는 무엇인가 불행의 여신이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 거실 테이블에서 아버지 티론과 그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는 현재 가족의 삶과 자신들의 모습을 한탄하며 한잔 두잔 마시고 있다. 어머니 메리는 과거 산고 후유증으로 돌팔이 의사에게 모르핀을 맞다가 거기에 중독되어 있고, 단순히 독감인 줄 알았던 에드먼드의 병은 폐병으로 밝혀진 상태다. 그러니 네 가족이 모여 있는 여름별장은 말 그대로 우울하고 꿀꿀한 잿빛 아우라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잿빛을 탈출하려면, 과거 화려했던 그 시절, 에드먼드의 말대로 ‘인생의 정점’이었던 시절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술을 마실 수밖에. 바로 여기서 스피노자가 말한 음주욕이라는 욕망, 혹은 감정이 발생하는 것이다. “음주욕(ebrietas)은 술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다.”(『에티카』중)

음주욕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에서 ‘지나친(immoderata)’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적당히 술 마시는 것을 음주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너무 지나치게 술을 찾을 때 음주욕에 빠진 것이다. 무엇이 술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낳는 것일까?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무기력과 패배 의식 때문이다. 현재를 잊고 싶은 정도만큼 우리는 과거 인생의 정점이었던 시절을 꿈꾸게 된다. 아니 꿈꾸어야만 현재의 잿빛에서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술이란 묘약으로 순간적으로나마 한때 정점을 향유하던 과거의 나가 불쑥 나타나 현재의 남루한 나를 추방할 수 있다. 처음에 완강히 물러나지 않으려 버티던 현재의 나는 어느 순간 한 잔 한 잔 들어오는 술의 힘 앞에 맥을 쓰지 못하고 점점 무기력해질 것이다.

때늦게 에드먼드의 형 제이미가 합류해서 현재의 무기력과 과거의 절정 사이를 오가는 술판에 합류하고 있는데, 어머니 메리마저 모르핀에 중독된 상태로 다시 등장하여 자기 인생의 정점을 몽환적으로 읊조린다. 술이나 모르핀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 남루한 현재를 벗어나 화려했던 과거의 정점으로 인도하는 묘약이니 말이다.

메리: 엘리자베스 원장 수녀님과 면담을 했어. 참 자상하고 좋으신 분이야. 지상의 성자시지. 난 그분을 진짜 사랑해. (…) 난 그분께 수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 (…) 졸업하고 집에 돌아가서 다른 친구들처럼 파티에도 가고 춤도 추고 즐기면서 살다가 일이 년 뒤에도 그 마음 그대로라면 그때 다시 와서 얘기해 보자고 하셨지. (…) 그게 졸업하던 해 겨울의 일이었지. 그리고 봄에 일이 생겼어. 그래, 기억나. 난 제임스 티론과 사랑에 빠졌고 얼마 동안은 꿈같이 행복했지.

이렇게 모든 가족이 마침내 ‘밤으로의 긴 여로’에 합류하게 된다. 이들 가족에게 더 이상 환한 낮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질 것 같다는 느낌, 이건 나만의 생각일까?



대중철학자.『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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