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북협력 통해 아시아 시대 열 때 더 큰 기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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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청단 베이징대 세계사연구원 원장과 국무원 학위위원회 역사학 위원, 국가사회과학기금 심사위원, 교육부 사회과학위원회 위원, 중국 영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1949년 중국 장쑤(江蘇)성에서 태어나 난징(南京)사범대 영어학과를 졸업했다. 난징대 역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 미국 하버드 대학에 가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귀국 후 난징대, 마카오과학기술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미래에 관심을 가졌다. 그때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출판했다. 20세기에는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21세기 들어 ‘G2(미·중) 시대’가 예고되는 가운데 중국 지도자들은 서구의 흥망사를 공부했다. 그 내용은 2006년 중국 CC-TV에서 ‘대국굴기’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대국굴기’의 학술 지도를 맡은 이가 첸청단(錢乘旦·65·사진)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다. 첸 교수는 2003년 11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제9차 집체학습 당시 ‘15세기 이후 세계 주요 국가의 발전 역사 고찰’을 강의했다. 대국굴기 구상은 ‘중국의 꿈(中國夢)’과 ‘신형대국관계’로 진화돼 나가고 있다. 첸 교수는 중국에서 영국사 연구의 선두 주자이자 베이징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지난달 10일 베이징대 앞 원진(文津)호텔에서 세 시간 남짓 첸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국가 흥망의 핵심 요소는 뭔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로 나뉘는데, 하드파워는 경제발전과 제도로 다시 나뉜다. 첫째로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 생산력, 과학기술, 노동력 수준, 국내총생산(GDP) 등이다. 둘째로 제도 가운데 정치제도의 효율성, 국가와 관료집단의 효율성, 경제제도의 정확성이 중요하다. 또한 사회제도로는 사회보장 시스템, 보육, 교육, 여성, 문화·체육 분야를 들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 하나의 국가통합 시스템으로 잘 운영되느냐를 살펴야 한다. 국가의 힘이 분산돼서는 안 된다. 경제 역량과 제도를 통합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소프트파워는.
“문화 분야에서 매력이 있어야 한다. 남의 관심을 끌고 배우도록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문화는 표면적으로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내적인 힘을 말한다. 과거 중국의 경극·서유기·삼국지 등은 높은 문화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중국엔 거의 없다. 최근 유행한 한국의 ‘강남스타일’도 그런 사례다. 학술, 이론, 사상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의 관심을 끄는 힘을 가져야 한다. 소프트파워의 두 번째는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즉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말하는데 이건 아주 중요하다. 현재 미국이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미 정부와 다투고 있는 요즈음 그를 숨겨준 러시아의 영향력이 드러나고 있다.”

-강대국 또는 하드파워라고 말하면 군사력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이가 군사력을 중요하다고 보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군사력을 보여줘야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거라면 이미 문제가 있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혁신과 국가 흥망 간의 상관 관계는.
“과학기술의 비중은 매우 크다. 산업화 초기엔 각국의 기술·과학 수준이 낮았고 여러 나라가 대체로 비슷했다. 초기에는 기술보다는 저렴한 노동력이 가격 우위를 결정했다. 그러나 갈수록 과학기술이 중요해지고 기술 발달에 의해 경제 패턴의 전환이 일어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하드웨어 중 둘째인 ‘제도’, 즉 과학기술 정책이 중요하다.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있느냐, 과학기술과 산업을 연계할 수 있느냐, 과학기술과 관련된 통합적 사회제도가 있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노동력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중요하고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젊은 인구가 많으면 경제가 성장한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많은 인구가 탄생했고, 이를 기반으로 나폴레옹은 전쟁을 치를 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시절에도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제가 더 발전한다고 믿었다. 미국은 유학 이민, 취업 이민을 양대 축으로 해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해 경제발전을 이뤘다.”

-요즘 선진국들의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진전되고 있다.
“젊은 노동력이 많은데 취업이 안 되면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되고 노령화가 진행되면 불안도 커진다. 중국·일본·한국은 빠른 속도로 노령화가 진행 중이다. 노동력이 부족하다. 어떤 어려운 문제보다도 심각한 상황을 몰고 올 게 인구 문제다.”

-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상속 제도를 둘러싸고 영국·프랑스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영향은 뭔가.
“영국이 프랑스보다 좋은 결과를 냈다. 영국에선 상속제도상 장자에게만 토지와 귀족 신분이 상속됐다. 그래서 산업혁명 전에 귀족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토지 상속을 받지 못한 이들은 상업이나 사업, 즉 금융·관료·군인 등 여러 가지 전문 직종에 종사하게 됐다. 프랑스에선 토지가 균등 상속되고 귀족 신분도 상속됐다. 그 결과 귀족 숫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재산이 없는 귀족이 많아졌다. 부르봉 왕조 시절에 귀족 직위의 매관매직이 심했다. 귀족들은 다른 직업을 갖지도 못했고 해외에도 못 나갔다. 사업도 학문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산업화 이전의 영국 상속제도는 산업혁명에 유리한 변수가 됐다.”

-국가 흥망과 교육의 연관관계 측면에서 영국과 독일의 교육을 비교하자면.
“문명의 역사가 있는 곳에선 선진 교육이 있었는데, 주로 고전을 가르쳤다. 근대 이후에 교육은 실용성 위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학, 의학, 천문학, 핵, 물리, 화학 교육이 발달했다. 과학이 중요해졌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과학과 큰 관련이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 공과대학이 생겨났지만 케임브리지·옥스퍼드에선 여전히 정치·외교·식민지 지배 등을 가르쳐 고전적 패턴의 인재를 양성했다. 반면에 후발 산업국가인 독일의 교육은 매우 실용적이었고, 과학기술 인재 육성에 집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의 성공에 충격을 받아 영국·프랑스 등이 이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미국의 번영은 ‘교육의 힘’이라고 볼 수 있나.
“미국은 유럽처럼 귀족 국가가 아니라 평민 국가다. 국가 예산을 써서 보편적 교육을 시작한 나라다. MIT 같은 공과대학이 만들어져 과학인재를 길러냈다. 영국 대학과 달리 실용형 인재를 양성했다. 경제·과학기술·경영관리 등을 가르쳤고 이는 미국에 매우 유용했다. 그러면서 인성교육이 약화됐다. 기술인재는 됐지만 독자적 사상을 가진 지식인재를 충분히 길러내지 못한다.”

-미국의 장래에 대해선.
“미국은 세계 제1의 나라고 중요한 나라다. 정점은 냉전이 끝난 직후라고 본다. 미국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게 보인다. 또한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영원한 1등을 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민사회다. 유럽과 남미·아시아, 중국·한국 등에서 대량 이민이 건너간 덕분에 경제가 발전했다. 그러나 인구구조가 변하고 있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인도계, 라틴계도 증가한다. 과연 미국 사회가 이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융합해 낼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미국의 패권 스타일이 문제라고 말한 이유는.
“일본계 미국인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에서 미국을 인류문명의 최정점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자만이다. 미국은 말로는 모든 문화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이 최고라고 믿는 것 같다. 다른 문화를 깔보는 자만심은 결국 미국에 타격을 줄 것이다.”

-중국의 장래는 어떻게 보나.
“중국은 발전도 많이 했지만 문제점도 많다. 정치·사회·경제 제도에서 배우고 고쳐야 할 게 많다.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적다. 고대엔 많이 있었는데 근대 이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한국의 장래는.
“한국은 남북 분단이 돼 있는 게 가장 문제다. 통일이 안 돼 외국 세력으로부터 간섭을 받는다. 한국은 인구와 국토 면적이 작은 나라다. (경제발전으로) 중요한 국가가 됐지만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기엔 어렵다. 남북 협력을 이루고 아시아 시대를 열 때 더 큰 기회가 온다.”

-아시아 각국의 독자적 성장보다 아시아 시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단독 국가의 성장 시대는 지났다. 미국 중심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그리고 유럽의 유럽연합(EU)이 탄생했다. 중국·한국·일본 동양 3국이 연대하면 아시아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될 거다. 미국은 유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럽 자체의 문제가 많을뿐더러 유럽은 미국화돼 있고, 미국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아시아 시대는 정말로 올 것이라고 보나.
“아시아 시대는 일본의 태도 때문에 쉽지 않다. 아마 미국이 꿈꾸는 미국·일본·한국 군사동맹도 일본 때문에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한·중·일 협력은 일본의 태도와 미국의 간섭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을 관통해 한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 연결사업은 매우 좋은 프로젝트다. 러시아의 태도가 자주 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일본이 반대할 거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아시아 시대는 아마 중국, 한국, 러시아, 북한 사이의 협력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한국의 국가 원로인 고 남덕우 전 총리는 동북아 안보협의체와 동북아 평화개발은행을 주장했다.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본다. 동북아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평화개발은행은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남북한 문제는 남북 당사자의 의지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개성공단의 국제화 방안을 어떻게 보나.
“바람직하다. 다만 북한 측이 중국 기업의 참여를 환영할 것인지 조심스럽다. 북한이 환영한다면 중국·독일·스웨덴 등 여러 국가가 함께 참여하면 좋을 거다. 과거에 중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를 했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중국으로서도 인건비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 다른 나라로 가는 것보다 대북 투자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

온라인 중앙일보·중앙선데이 베이징=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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