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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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투우」나 「투견」은 이미 잘 알려져 상당한 전통과 「팬」을 갖고 있지만 「닭싸움」이라면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투계를 집에 두고 키우는 가정은 멀리까지 그 소문이 날 정도로 드물다.
충남 아산군 배방면 공수리 배방 국민학교 교사 권태완씨 (38) 댁은 학교 어린이들의 입을 통해 이 근방 온양 읍내에선 「투계집」으로 유명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동물을 좋아해서 축산과를 전공 (서울대 농대 중등 교사 양성소 졸업) 했던 권 교사는 지금부터 12년전 육군 중위로 부산에 있을때 미군 고문관으로부터 투계 한마리를 선사받았다.
털이 검고 몸집이 다부진 월남산 「샤모」종이다. 62년 제대하면서 서울 집으로 갖고 온 짐은 이 닭 한 마리를 넣은 상자뿐이었다고 할 정도로 권 교사는 닭에 온 정성을 쏟았다. 지금 마당 한쪽 닭장 속에 쌍쌍으로 들어있는 여섯 마리는 모두 그 닭의 후손들이다.
투계는 보통 닭보다 몸짓이 두배나 크며 부리가 매처럼 매섭게 구부러져 있다. 물론 먹기도 많이 먹어 하루에 4원어치의 배합 사료와 밀을 먹는다.
투계는 홰에서 재우지 않는다. 홰에 몸이 닿아 못이 박히면 싸울 때 둔해지기 때문이다.
『닭만 보면 싸움을 걸지만 사람에게는 순종한다』고 투계의 특성을 말하는 권 교사는 『닭이라 하면 키우는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개나 고양이에 못지 않게 정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투계를 기우는 재미는 「시합」하는 재미다. 결전을 준비하는 설렘과 싸움에 이기는 기쁨은 『어디에다 비길 수 있겠느냐』고 권 교사는 요즘 싸움 준비를 즐거워하고 있다. 「시합」은 1년에 한번, 겨울 방학 동안 서울에서 갖는다. 아직 투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적어 본격적인 대회는 못하고 전국에 몇명 안 되는 기호인들이 편지로 연락하여 날짜를 잡는다. 『우리 집 투계들의 체격이 늠름해지고 행동에 생기가 돌면 가만있을 수 없어요.』 서둘러 편지하고 시합을 마련해야 잠이 온다고 권 교사는 말한다.
12월 전국 대회를 위해선 9월부터 연습을 한다. 권 교사 댁 투계들은 보름에 한번씩 자기형제끼리 「스파링」 상대로 실력을 재어본다. 그래서 유망 선수로 점 찍히면 대접이 달라진다. 평소에는 못 먹는 쇠고기와 달걀을 먹고 아침저녁 권 교사가 안아보며 「콘디션」을 점검한다. 『얼굴색을 보면 금방 알지요』 벼슬이 검거나 누르스름하며 털이 윤기를 잃으면 몸이 불편한 징조다. 투계는 두 살 때면 사람으로 따져 20∼25세의 한창때라 제일 기운이 세다. 그래서 지난 67년 권 교사 댁 두살짜리도 전국 대회서 우승을 했다. 『그때는 너무 좋아 우리들이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닭도 시합에 이기면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소리소리지른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닭 주인을 들어올리고.
그러나 자기가 제일인줄 알고 으시 대던 닭이 상대방의 센 공격에 부딪치면 이내 전의를 잃고 고개를 움츠려 항복하는 시늉을 한다. 이쯤 되면 「링」 밖의 주인이 더 애가 탄다. 권 교사도 몇 번 이런 고배를 마셨다.
유독 자존심이 강했던 한 놈은 서울서 지고 오는 「버스」속에서 내내 울어서 혼이 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싸움에 진 닭들은 하루 이틀 식음을 사양한다고.
이겼건 졌건 한번 싸움을 치르면 온몸에 멍이 들고 털이 빠지고 피투성이가 된다. 권 교사는 이럴 때 밤을 새워 더운물 찜질을 해주고 「알콜」로 닦아주며 약을 바른다.
오는 12월 서울 뚝섬에서 열릴 투계 대회 준비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는 권 교사는 앞으로 투계협회를 조직하는 것이 소원.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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