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뒤의 세상 지금보다 나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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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SF 블록버스터 영화 ‘엘리시움’은 주제의식이 선명하다. 가진 자들의 세계로 향하려는 맥스(맷 데이먼·오른쪽)와 그를 막으려는 엘리시움의 용병. [사진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2154년.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최상류층만이 살 수 있는 호화로운 우주 정거장 엘리시움. 그 별처럼 빛나는 엘리시움을 올려다보며 가난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지구.

 ‘엘리시움’(Elysium·29일 개봉)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분히 현실적인 SF 블록버스터 영화다. 닐 블롬캠프 감독은 2009년 ‘디스트릭트9’을 내놓으며 단숨에 주목받았던 신예.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특별구역에 수용되며 벌어지는 혼란을 독특한 형식에 담아 인종차별·빈부격차를 비판한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4년 만에 두 번째 SF 영화를 내놓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었다.

 ‘엘리시움’은 ‘디스트릭트9’의 문제의식을 보다 큰 무대에 펼쳐놓는다. 엘리시움은 고대 그리스에서 선택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는 사후세계로, 일종의 천국·낙원을 뜻하는 말이다. 황폐한 땅의 가난한 노동자 맥스(맷 데이먼)는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고, 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시움으로 향한다.

그러나 상류층 세상이 그를 환영할 리 없다. 맥스는 엘리시움의 용병 크루거(샬토 코플리)와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설정은 기발하고, 화면은 흥미롭다. 모든 것이 갖춰진 엘리시움과 그에 대비되는 남루한 지구의 모습은 극심한 빈부차를 겪고 있는 현재의 지구촌과 다름없다. 엘리시움으로 몰래 숨어든 불법이민자들이 가차없이 처벌받고, 위험한 환경에서 방치되다시피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 2154년이 아닌 2013년, 지구촌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감독 스스로 엘리시움 장면을 ‘청정도시’ 캐나다 밴쿠버에서, 남루한 지구의 모습을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초대형 쓰레기장에서 촬영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현실을 참조했다”고 설명했다.

 ‘엘리시움’은 빈부격차·환경문제 등 사회현안에 관심을 돌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 감독 스스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됐다. 이런 선명한 주제에 맷 데이먼과 샬토 코플리의 현란한 액션이 덧붙여졌다. 마치 로봇들의 전투처럼 이 두 남자의 몸과 몸이 부딪칠 때의 거친 느낌이 짜릿하게 전달된다.

 기대가 컸을까. 아쉬운 점도 많다. 관객은 화려한 엘리시움의 풍경을 ‘구경’하고 싶지만 그 풍경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집을 구경하는 느낌에 가깝다. SF로서의 볼거리도 생각만큼 많지 않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충격이 별로 없으니, 맥스의 아픔도 그리 처절히 와 닿지 않는다. 배우들의 육중한 몸싸움도 과다하다는 느낌을 준다. 관습적으로 처리된 결말에 이르러서는 낡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엘리시움’과 ‘설국열차’=‘설국열차’와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영화 모두 미래사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투쟁을 내세우고 있다. 가난한 꼬리칸과 지구, 호화로운 기차 앞칸과 엘리시움은 놀랍도록 닮았다. 꼬리칸에서 앞칸으로 돌격하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와 엘리시움으로 가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맥스를 지켜보다 보면 이 투쟁이 얼마나 어렵고 격렬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커티스의 적으로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가, 맥스의 적으로 로데스 국방장관(조디 포스터)이 있다는 것도 우연치곤 흥미롭다. 둘 다 냉철하고 이기적인 여성 지도자다. 두 감독 모두 결국 희망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 희망, 희생 없이 불가능하다.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형석 영화평론가) : 감독의 전작이 ‘디스트릭트9’이었다는 선입견(?)만 없다면 그런대로 즐길 만한 SF 액션. 굳이 전작과 비교하자면, 커져 버린 스케일만큼 평범해졌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는 결코 자신의 음흉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저 멀리 엘리시움에서 없는 자끼리 싸우도록 부추긴다. 세상은 미래로 가도 잘 변하지 않는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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