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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 + 김주성 … 이종현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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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고려대 1학년 센터 이종현이 26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녹지운동장 코트에 앉아 두 손으로 농구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민규 기자]

‘서장훈(39·2m7㎝·은퇴)과 김주성(34·2m5㎝·동부)을 합쳐놓은 선수가 등장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선수는 국내에 없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대학생 센터가 있다. ‘속공하는 괴물센터’ 이종현(19·2m6㎝), 고려대 1학년이다.

 이종현은 지난 22일 막을 내린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깜짝 스타로 발돋움했다. 키 2m6㎝의 이종현은 골 밑에서 프로 형님들의 슛을 내리찍으며 고려대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어 키가 더 클 수도 있다고 한다. 서장훈처럼 정확한 미들슛 감각도 뽐냈다. 빅맨이지만 속공에 적극 가담할 정도로 스피드도 뛰어나다. 16년 만의 농구 월드컵 진출로 오랜만에 농구 붐이 일어난 가운데 벌어진 최강전에서 이종현은 관중과 전문가들을 흥분시킬 만한 활약을 보여줬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26일 고려대 체육부 숙소에서 이종현을 만났다. 경복고 3학년이던 1년 전 이맘때 만났던 이종현은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유망주에 불과했다. 1년이 흐른 후 만난 그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며 여유 있게 웃었다.

 이종현은 지난해 4월 계성고와의 회장기 4강전에서 42리바운드를 잡아내 중고농구연맹 전산 집계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때만 해도 ‘키만 믿고 뛰는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해 중순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 고교생으로 유일하게 뽑히자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해 12월에는 108연승을 달리던 상무를 꺾고 고려대의 농구대잔치 첫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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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대학농구리그를 비롯해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오가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휴식이 간절했던 그는 최강전을 마친 후 오랜만에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종현은 “최강전 우승한 다음 날, 용인에 있는 워터파크로 놀러 갔다. 오랜만에 클럽에서 파티도 했다. 아버지를 닮아 술을 잘 못하지만 술도 한잔 했다”며 웃었다. 최강전 MVP와 대표팀 포상금으로 1000만원 가까운 상금을 받은 그는 “팀원들 덕분이다. 피자, 치킨으로는 안 되고 레스토랑 가서 제대로 한 턱 내고 남은 돈은 부모님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선수권에서 이승준과 김주성을 보고 배우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특히 김주성은 웨이트 트레이닝 요령과 수비 위치 등을 세심하게 가르쳐주는 ‘과외 선생님’이었다. 이종현은 “주성이 형이 ‘네가 나보다 실력이 낫다. 더 발전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센터가 돼라’고 말씀해주셨다.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다”며 “서장훈과 김주성을 합쳐놓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몇몇 농구 전문가는 대학 무대에서 적수가 많지 않은 이종현이 빨리 프로에 진출하는 게 실력 향상을 위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종현에게 프로 조기 진출에 대해 묻자 “민감한 문제”라며 곤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개인적으로 3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고려대 우승에 많이 이바지하고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후 신중히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구에 시간과 마음을 뺏겨 캠퍼스의 낭만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이종현은 “공부를 하며 여자친구도 사귀고 휴가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겨울 즈음 시간이 나면 하와이 여행이라도 가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 당장 다음 달 1일 대학농구리그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 인터뷰를 마친 이종현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하며 몸을 만들었다. 파워를 바탕으로 서장훈 같은 골 밑 장악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다.

글=오명철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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