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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중심으로 본 서울 「펜」 대회 채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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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37차 국제 「펜」대회의 서울 개최는 한국 문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좋은 계기를 마련한 대신 우리 문화계에 적잖은 교훈도 남겨 주었다. 「펜」 대회는 동양에서 두 번째로 개최된 것일 뿐 아니라 우리 나라로선 전례 없는 국제적 문화 잔치이기 때문에 수확에 비례할 만한 반성의 여지도 남겨 놓았다.

<대회의 성과>
「펜」은 그 구성부터가 특이하다. 시인·소설가·극작가·평론 및 수필가·편집인 등 광범한 문필인이 이에 가담돼 있다.
문필인은 엄격한 의미에서 세계 각지의 각계 각층 사람을 총망라하고 있다.
『대체로 그 성분을 구분하면 ①작가를 대표하는 사람 ②정부를 대표하는 사람 ③유아독존의 자기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영국의 극작가 「폴·터널리」씨는 말한다. 따라서 이 문필인들은 각지 개성이 강하며 어떤 획일된 대회 진행에는 많은 제약을 준다.
그러함에도 한국 「펜」은 이 처음 가진 국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각국 대표들은 한결같이 「성대한 잔치」에 찬사를 보내고 「따뜻한 환영」을 감사하고 있다. 즉 「찰즈·폴러드」 미 「펜」 회장의 말과 같이 『이론적 대화를 나누는 광장이 아니라 친목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이 대회는 큰 성과를 거뒀다. 또한 우리 문단에 차원 높은 형태의 문학 언어와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서 김종길 교수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운영의 허점>
반면에 대회 운영에는 몇 가지 헛점도 없지 않았다. 서울 대회는 어떤 점에서 거국적인 행사였던데 비하여 범문단의 참여는 되지 못했다.
우리 나라 문단의 주요 인사 중에는 전혀 무관심했고, 혹은 소홀하게 대접돼 『이번 기회에 서로 융화하는 정지 작업의 노력이 없었던 게 아쉽다』고 한 관계자는 말한다.
또 백철 대회장은 『일손이 모자라 혼났다』고 하는데 그것은 대회 사무국이 능동적인 조직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말로 해석된다. 오히려 주최국 문인 임원들은 대회 업무보다 사적인 접촉으로 움직인 까닭에 각국 대표와의 연결을 잘 맺을 수 없었는데 반성과 비난의 소리마저 없지 않다. 그래서 한 실무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던들 이만한 성공을 기대 할 수 없었다』고 실토한다.

<통역의 난관>
회의 진행상 통역 문제는 까다로운 고비를 겪었고, 이점 백철 대회장은 경험 부족 때문임을 자인한다.
6차의 회의에서 외국인 50여명이 발언했는데 대부분이 「페이퍼」가 미처 인쇄되지 못한데다가 즉석 토론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어로의 동시 통역이 아주 듣기 거북했다고 한국 작가들은 불평했다. 특히 특별 강연한 「토니·마이에」씨의 경우 원고가 불문밖에 없는데다가 한국어 통역의 연결이 좋지 않아 골탕을 먹었다. 이런 통역 사정 때문에 토론 과정에서 많은 한국 대표들이 아예 외국어를 해버려 일부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총평하여 일본의 삼포주문씨는 『유머를 얘기하면서 아카데믹한 분위기에 휩싸여 도리어 지루함을 느꼈다』고 3일의 종결 토론에서 지적했다.

<후대와 비례>
대회 성격이 그러하지만 주최측은 「접대」에 신경을 많이 썼다. 모윤숙 준비위원장은 『외국 대표들의 비위 맞추느라고 어려움이 컸다』는데, 오히려 신경 과민이었다고 말할 정도.
오찬·「리셉션」 등 파티는 개회 전인 28일부터 3일의 폐회 파티까지 11번이나 열렸다.
각국 대표들은 파티를 통해 더욱 우의를 나눴고 또 우리의 민속 예술과 고유 음식·범절 등과 두루 접할 기회를 가졌다. 대표들은 이번 회의의 주제인 유머를 오히려 본회의장에서보다 그런 자리에서 더 즐기는 것 같았다.
29일 시민 회관의 민속 예술제전이나 1일 경회루의 가면극 등은 우리 민속을 외국 작가들에게 잘 소개해 깊은 인상을 심어줬고 특히 2일 밤의 기생 파티는 외국 대표들 사이에 인기의 대상. 그런 반면에 특색 없는 파티가 찾아 모처럼의 선의가 그들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외국 대표들은 오히려 가정에의 아늑한 초대를 바라고 있었는데 그 몇몇 초대는 특정인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았다.
외국 대표에 대한 접대는 몇몇의 유명 인사에 집중된 나머지 그 밖의 대표들에겐 소외감을 주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재미 교수 서두수씨는 『찾아온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도를 지나치면 도리어 한국을 그릇 인식시키기 쉽다』고 경고한다.
어쨌든 각국 대표들은 예상보다 더 한국을 보고 가려 했다. 판문점 관광은 인원 초과로 이틀에 나눠 봤고 고궁과 지방 관광까지도 번번이 거의 전원이 참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날이 갈수록 한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이 높아갔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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