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이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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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때 아니게 「해학」풍년이 들었다. 「해학」이란 말은 서울의 국제「펜」 대회만 아니었던들, 시정인에겐 낯선 용어이다. 우선 글자의 획이 복잡하고, 일상어와는 거리가 멀다. 해학 풍년이 든 것은 이번 「펜」 대회의 주제인 "Humour in Literature-East and West"를 『동서 문학에 있어서의 고학』이라고 번역한 데서 시작된다.
비슷한 뜻으로는 「골계」(골계 또는 활해)라는 말도 있다. 해학이나 골계는 모두 중국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사원』을 보면 해학의 출처는 진서(당태종 때) 「고개지전」이다. 골계도 초사복거편이나 사기저리자전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의 용례로는 우선 서거정(1420∼1488)의 「태평화골계전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책의 제목으로 이 말이 쓰인 예는 많다. 최근엔 본사 발행 종합지 『월간중앙』에도 모노 국문학자가 「골계잡록」이라는 제목으로 고전 속의 「골계」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해학의 용례는 박동량(1569∼l635)의 「기재사초』속에서 『선회곡』라고 쓴 경우를 볼 수 있다. 회해·희학·배학·비해·관희 등은 모두 해학이나 같은 뜻의 말이다.
우리 나라 토속어로는 「익살」이라는 말이 있다. 「한글 학회」지음 『큰 사전』에서는 익살이나 골계 해학을 모두 같은 뜻으로 친다. 최근 국문학자나 작가들 사이에서 익살의 뜻을 좀 달리 해석하려는 것은 주목을 끈다.
익살은 어릿광대의 몸짓같이 품위가 덜한 우스개 소리의 뉘앙스가 짙게 풍긴다는 것이다. 영어 쪽으로 말하면 comic에 가깝다는 말이다. 『동서 문학에 있어서의 익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은 이런 때문일까. 그러나 중국의 수필가 임어당(내한 중)은 해학이나 골계라는 자국의 원어를 두고도, 따로 유묵은 영어의 humour를 발음 그대로 자에서 차자한 표현이다. 중국 발음은 유무에-.
어쩌면 해학·골계·익살·유묵·유머 등은 모두 제각각의 캐릭터(성격)를 갖고 있는 것도 같다. 중국 고전의 분위기로 헤아리면 골계는 능변의 뜻으로 변설이 능할 때 더욱 빛이 난다. 해학은 그러나 어희 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익살은 그 토속적 연원으로 보아 세속에서 유행 했음직 유머(humour=서구어는 모두 같은 철자)는 그 어원인 라틴어의 뜻처럼 습윤(moisture)한 기분을 준다. 사뭇 무슨 영감의 재치인 것도 같다. 그렇다면 주제의 번역은 도무지 불가능한가? 성급히 굴 필요는 없다. 유머를 어떻게 번역하든, 동양인과 서양인은 그것을 느끼는 태도와 이해에 있어서 우선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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