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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사회부 데스크에 비친 그 실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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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에 있었던 일-. 시인 박의상씨(29)의 결혼식때 답례물이 조그만 화제가 되었었다. 답례물은 다름아닌 그의 제2시집이었다. 얼마나 시인다운 착상이며, 자기분수를 지킨 것으로 오랫동안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이름모를 청첩장많아>
그런가하면 모수출 회사원 C씨(28)의 약혼식은 그 비용을 두고 동료들 사이에 심심찮은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서울 A호텔층을 3시간동안 전세얻어 올려진 약혼식때, 약혼녀에게 해준 패물값만도 3백10여만원이 들었다는 것이다.
올해 서른다섯이 된 회사원 K씨는 아직도 총각으로 늙는 이유를 『성격탓도 있지만 혼례의식이 주는 벅찬 부담감도 큰 원인』이라고 했다.
지난 15일 서울시경국장 부속실에서 생긴 일이다. 하오 3시쯤 날아든 한장의 청첩장을 받아쥔 부속실 근무 문봉주경위의 이마가 갑자기 찌푸려졌다. 신부 아버지가 다름아닌 김현옥씨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신랑도 신랑 아버지도, 신부도 청첩인들의 이름도 생면부지인데 단지 신부아버지가 전서울시장 김현옥씨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히 전시장인 김씨에게는 그런일이 없다는 것이 문경위의 생각이었다. 전화를 한다 수소문을 한다해서 얻은 결론도 서울시장 김씨는 아니라는 것이 한장의 청첩장이 보여준 의미는 얼마나 타인들에게도 큰 부담감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도 있는 일.
사실 요즈음 청첩장같은 건전한 의미의 알림역할보다는 일종의 금전관계 고지서로 타락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같은 갖가지 결혼의식에서 빚어진 폐습만이 허례와 허식의 전부는 아니다.

<교통방해하는 장례행렬>
지난 4월중순의 일-. 요란스런 장례행렬차 한 대가 서울 아현고가도로를 누벼,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한때 교통마비현상을 빚었다.
상주들의 차뒤에 줄지은 각종 자가용차의 물결이 40여대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중에 그 행렬이 집권층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씨 가족장례행렬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마치 허례와 허식의 큰 시위같았다.
결혼·상례·제례에서 뿐만도 아니다. 범죄의 뒤안에도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여성범죄통계에서도 허례와 허식이 탈바꿈한 범죄가 20%에 가까운 높은 율을 보여 생활속에 깊이 뿌리박힌 가식적인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도 잘 나타내 주고있다.
한때 『화려한 예물보다 건강진단서 한 장』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여성단체의 새생활 운동도 지금은 흐지부지된 채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있다. 그뿐인가 지난해 3월5일 선포된 가정의례준칙도 1년이 지난 지금에는 빛을 잃고있다. 좌석 1천석, 1시간 사용료 15만원에 결혼식 프로그램까지 배부되는 S호텔 H홀등이 결혼식장으로 인기를 얻고 사용자가 부쩍늘어나는 추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허례의 제물된 모범사원>
서울지검에 근무하던 모검사의 청첩장 사건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3천5백장의 청첩장을 마구 뿌렸다는 소문이 확인되지 않은 채 결국 좌천이라는 스스로의 화를 당하고 말았지만 분수에 넘친 허례허식 행위야 말로 자멸까지도 가져온다는 것을 가장 잘 증명해 준 케이스.
최근 회사돈 1억원을 워커힐·카지노 올림포스·호텔·카지노등에서 탕진한 채 쇠고랑을 찬 전한국모방 경리담당 총무부장 최모씨(49)의 일도 따지고 보면 그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최씨에게 허례의 의무를 부여해준 회사나 사회관습의 탓으로 볼 수 있겠다
30년 경력의 모범사원으로 소문난 최씨가 회사 손님 접대차 관광호텔의 카지노에 들른 일부터가 허례의 제물이 된 시초였던 것이다. 손님 접대가 자신의 재미로 바뀌고 결국은 공금을 축낸 채 패가망신하게 된 것이다.

<억지 간소화도 꼴불견>
그렇다고 양복차림에 굴건을 쓰는 꼴불견까지 빚어내는 억지 간소화를 강조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분수에 넘치는 허례허식이 스스로와 이웃에까지도 큰 피해와 부담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각자 자각하여 조금이라도 새 생활에 길을 닦자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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