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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공해에도 추방령|매연버스 운행정지 가처분의 판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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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거리의 무법자 매연차량도 법앞에는 무릎을 끓어야했다. 서울민사지법 합의16부(재판장 임채홍부장판사, 배석 박철우·가재환 판사)는 매연버스때문에 견디다 못한 최혜민씨(30·서울서대문구홍제동5)가 김종표변호사를 통해 운행정지가처분신청을 낸 사건을 심리 끝에 『이유있다』고 인정, 3대의 공해버스에 대해 운행정지 가처분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서울 무악재를 오르내릴 때마다 심한 매연을 발산한 서울영5-2591(삼미운수소속) 5-3061(신인운수소속) 5-1541(제일여객소속)등 3대의 버스에 대해 『매연발산방지장치를 달때까지 운행을 정지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가처분 결정은 우리 나라 사법사상 처음있는 판례로 앞으로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공해의 침해배제를 구할 수 있는 것을 터놓았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끌었다.
공장의 소음·진동·매연등 각종 공해에 대해 피해를 입은 인근 주민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성을 제기, 승소판결이 내려지는 예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앞으로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공해의 침해배제를 구하고 이에대한 결정이 있는 것은 이번이 첫 케이스가 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가처분 결정에서 『집달리는 차량운행정지의 내용을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해야하며 신청인은 피신청인들을 위해 1만원을 공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집달리는 『매연발산방지장치를 붙일때까지 운행해서는 안된다』는 가처분결정을 그 버스의 소속회사가 알 수 있도록 차량에 공문을 붙이거나 소속회사의 게시판에 붙이는등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게 된다.
신청인에게 1만원을 공탁하게 한 것은 가처분 결정이 글의 뜻과 같이 어디까지나 본안 소송에서 이길 것을 전재로 한 잠정적인 처분이기 때문에 이 결정으로 피신청인들이 억울한 손해를 보게될 경우에 대비,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한 조치이다. 이 결정이 있은후 신청인이 본안 소송을 제기않을 경우와 본안소송의 심리결과, 신청인에게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거나, 기타 『원고의 주장이 이유없다고 인정되어 패소할 때에는 피고(피신청인)들은 공탁된 1만원을 찾아 피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피신청인등이 법원의 가처분결정을 무시하고 그대로 운행할 경우에는 신청인은 또 다른 법적절차를 밟아 운행정지를 강제할 수 있다. 피신청인은 이 가처분 결정을 근거로 대체집행을 위한 가처분신청을 재기, 재판부의 결정문 내용대로 해당버스를 일정한 장소에 강제유치하는등 장비의 개선없는 운행을 막을 수 있다.
공해의 침해배제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낼 수 있는 법적근거는 외국에서도 뚜렷한 판례체계를 찾기 힘들며 학설상의 이론이 가처분신청을 인정하는 판결의 사상적, 바탕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해의 침해배제권을 인정하는 학설로는 ①물권적 청구권설 ②불법행위설 ③인격권설 등으로 집약되고 있다.
독일에서 주창되고있는 물권적 청구권설은 공해가 발생되는 토지와 이웃한 토지소유권에서 침해 배제권이 인정된다는 것으로 장소적 관념이 기본이 되고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불법행위설은 공해를 일으키는 것이 불법행위이므로 피해자가 갖는 손해배상청구서에 근원을 두고 있으나, 앞으로 있을 손해까지 예상하는 결과가 되어 비교적 약한 이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 유력한 학설로 등장한 인격권설은 공해의 침해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인격을 침해한 것으로 보아 인격침해에 대한 배제가 인정된다는 이론이다.
공해의 침해배제권을 인정한 본보기로는 독일의 판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학교부근에서 사는 한 시민이 학교옆의 공로를 지나다니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소음때문에 해를 입었다고 주장, 침해배제의 가처분신청을 냈었다.
하급심에서는 신청인에게 침해배제권이 없다고 인정했으나 최고재판소에서는 하급심의 판결을 깨고 신청인의 주장을 받아들었다는 것이다.
이 판례는 신청인이 소음이 나는 학교주변의 토지에 살고있어 토지소유권에 침해배제권을 인정한 장소적 관념이 짙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공해가 심하다고 해서 아무나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서 해를 실지로 입고있는 사람만이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행 민법에서 이 판례와 비슷한 법조문을 찾을 수 있으나 매연차량케이스에는 적합치않다는 것. 민법 2l7조(매연등에 의한 인지에 대한 방해금지)는 ①토지소유자는 매연, 열 기체, 액체, 음향, 진동, 기타 이에 유사한 것으로 이웃토지의 사용을 방해하거나 이웃 거주자의 생활에 고통을 주지 아니하도록 적당한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 ②이웃 거주자는 전항의 사태가 이웃 토지의 통상의 용도에 적당한 것인 때는 이를 인용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있다.
매연차량에 대한 서울민사지법의 가처분 결정은 인격권설에 근본바탕을 두고있으면서도 공해발생장소와 피해자의 거주지를 고려한 장소적 관념을 중시한 판결인 것으로 풀이되고있다.
따라서 공해발생장소와 이웃한 주민이 아닌 일시적으로 지나가게 된 사람은 침해배제청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경우는 공해로 인한 피해의 정도를 산출하기가 힘들며 손해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어렵기때문이다. <심준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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