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으로 손톱 치장하고, 여자 선수끼리 시상대서 키스하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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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19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이달 10일부터 18일까지 열렸던 2013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는 동성애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동성애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러시아가 6월 공표한 동성애 선전 금지법 때문이다. 미성년자에게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전달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법이다. 이는 러시아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며 법을 어길 시 감옥에 갇히거나 추방당할 수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6월 동성 결혼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러시아는 국민 대다수가 보수적인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어 동성애를 혐오하는 풍조가 강하다.

 대회 보이콧은 없었지만 몇몇 선수가 러시아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했다.

 스웨덴의 높이뛰기 선수 엠마 그린 트레가로와 200m 육상의 모아 혤머는 손톱을 무지개색으로 알록달록 꾸미고 경기에 출전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무지개색은 국제적으로 동성애 단체를 상징하는 깃발에 쓰인다. 이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스웨덴 육상협회에 선수들의 이 같은 태도가 ‘정치적·상업적 표현을 금지한다’는 연맹 규정에 저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레가로는 높이뛰기 결승에서는 무지개색을 지우고 붉은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출전했다. 혤머는 예선에서 탈락해 더 이상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없었다.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1600m에서 우승한 러시아 대표팀의 크세니야 리졸바(왼쪽 둘째)와 타티야나 피로바가 시상대에서 키스하고 있다.[로이터]

 러시아의 ‘장대높이뛰기 여제’ 옐레나 이신바예바는 트레가로를 겨냥해 “우리는 스스로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년과 소녀, 남과 여가 더불어 살아가는 게 세상이다. 우리에게는 존중해야 할 법률이 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곳의 룰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발언 때문에 동료 선수와 서구 언론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자 이신바예바는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인터뷰 때문에 뜻이 왜곡됐다”며 “다른 나라의 규칙도 존중하자는 의미였으며, 나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17일에는 여자 1600m 계주 시상대에서 러시아의 크세니야 리졸바와 타티야나 피로바가 키스했다. 동성애 선전 금지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펼쳤던 퍼포먼스와 유사했다. “단순히 기쁨을 나누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해석은 제각각이다.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단체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태는 나치의 히틀러와 다를 바 없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내년 2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러시아 측에 공식 입장을 분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관중을 동성애 때문에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법안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미성년자에게 동성애를 알리는 행위를 막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배지를 착용하거나 티셔츠를 입는 행위도 용납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동성애 금지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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