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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사이보그 감시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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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논설위원

출현은 불안 유발자다. 새로운 기술이나 별종이 등장할 때 우리는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미디어의 역사가 그랬다. 인쇄술이 보급될 때 금속활자가 수기(手記)의 신성함을 훼손하는 악마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TV 출현기에는 영상이 지적 문명의 파괴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황당한 정보가 난무하는 불신 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사회가 이런 우려를 무난히 소화해냈기에 이들 미디어는 주류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는 구글 글라스(안경)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뜨겁다. 음성 명령만으로 검색·전화·촬영을 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다. 영화 속의 아이언맨처럼 이 기기를 쓴 사람이 “오케이 글라스”라고 말하면 눈앞에 투명 스크린이 펼쳐진다. 그 상태에서 순식간에 인물을 탐색하고 현장을 촬영한다. “은밀함과 교묘함이 이 기기의 특징”(임동진 박사, 한양대 강의교수)이다. 구글은 지난 5월 시제품을 만들어 1000명에게 뿌렸다. 시제품 사용자들이 올리는 사용 후기가 구글 안경의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26세의 여성이 있다. 교통사고로 팔다리를 못 쓰는 사람이다. 구글 안경을 쓰면서 다시 세상과 통할 수 있게 됐다. 손을 쓰지 않고 전화를 걸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 소방관이나 응급구조대원도 수호자다. 급박한 상황에서 부상자나 화재 장면을 그대로 소방본부로 전송하면 피해를 확 줄일 수 있다.

 게임 회사들은 마법 안경의 미래에 주목한다. 바로 눈앞에 펼치지는 화면에서 실감 게임을 즐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독을 들이는 쪽은 포르노 업계다. 카메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생생한 화면을 보여줄 수 있다. 이미 구글 안경을 활용한 포르노앱이 등장했다.

 수호자만큼이나 고발자도 많다. 한 다큐 제작자가 길거리에서 사소한 폭행으로 경찰에 끌려가는 일반인을 찍었다. 이 영상을 올리자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불 붙었다. 구글 안경은 최고 감각기관인 눈에 바짝 붙어 있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즉각 반응할 수 있게 만든다. 구글 안경 착용자는 움직이는 CCTV인 셈이다.

 범죄 악용의 우려도 쏟아진다. 눈앞에 지나가는 사람을 노려본다, 그 행인이 올린 인터넷 게시물을 검색해 신상·주소를 파악한다, 졸졸 따라가 나쁜 짓을 한다는 식의 시나리오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이 내 학력·친구·취향을 조용히 검색하고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인가. 이런 우려 때문에 미국 일부 지역의 스타벅스에서는 구글 안경 착용자의 출입을 금지하고 나섰다.

 근대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사람의 감시 수단은 바로 사람이었다. 그 후 녹음기·카메라·CCTV 같은 도구가 사람을 대신했다. 구글 안경의 출현은 새로운 감시 사회의 조짐이다. 사람의 몸에 지능형 감시 도구가 달라붙은, 인간과 컴퓨터의 합체적 존재가 언제든지 감시자로 돌변할 수 있는 사회, 사이보그(cyborg) 감시 사회의 그림자다.

 인간에게는 도구를 몸에 최대한 가까이 붙이려는 욕망이 있다. 봉화대·공중전화·휴대전화로 변신해 온 통신 수단이 그랬다. 그 욕망은 구글 안경 같은 ‘인체 밀착 스마트기기’로 이어진다. 삼성·LG·소니는 스마트시계를 개발 중이다. 머지않아 귀걸이 컴퓨터나 인체 이식칩이 그 바통을 이어받게 될지 모른다. 기술의 허들이 갈수록 낮아지는 지식융합 시대에서 이런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마법의 안경·시계 출현은 어떤 사람에게는 새 삶을 준다. 신(新)산업의 씨앗도 된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사생활 침해와 범죄도 만들어낸다. 진행 중인 미국 사회의 논쟁은 우리에게는 백신이 될 수 있다. 미래상에 맞는 제도·규범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사이보그 감시 사회는 눈앞에 와 있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