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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3세기초의 파리대학의 권위는 엘로이즈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아베랄 혼자 지탱했었다.
지금 카르티에·라테 또는 레프트·뱅크라 불려지는 파리의 한 구역은 당시에 아베랄의 명성을 좇아 모인 학생들이 센강을 넘친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20세기초의 세계적인 학자 크로체는 파시즘반대의 거두였으나 전능의 뭇솔리니도 그를 내쫓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그의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교수가 되지는 않았다. 가르치는데 시간을 빼앗기기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크로체나 아베랄과 비교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요새 특히 우리네 대학교수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아베랄이 학교에서 받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 대신 개인지도의 푸짐한 사례금이 있었고, 권위와 이에 따르는 심리적 충족감이 있었다.
크로체에게는 또 교직을 맡지 않아도 좋을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에 서지 않았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MAMMON(재신)이 지배하고있는 요새 우리네 대학교수들은 크로체만한 여유를 몹시 부러워한다. 빛 좋은 개살구 라지만 그만한 권위도 이젠 바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직업평가를 위한 각종여론조사에서 늘 최 상위를 차지하고있던 대학교수직이 차츰 하락되어 가고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자조하는 대학교수도 적지 않다.
이런 교수직도 조교수가 되려면 10년이 걸린다.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그리고 받는 돈이 고작3만원 가량 된다.
이 속에서 책도 사 봐야하고 대학교수로서의 위신(?)을 위해서 늘 넥타이를 매고 다녀야한다. 그러나 아무리 선비라도 먹어야 연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조교수도 연봉9천 달러 정도밖에 안된다. 웬만한 숙련공이 1만 달러를 넘게 받으니까,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최저의 연구생활은 할 수 있다. 스네이터스·심벌로서의 매력도 여전하다.
그러니까 문교부가 2년 전부터 교수들에게 지급하는 연구조성비는 새 발의 피. 별 보탬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올해에는 5월이다 지나도 웬일인지 그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 1년 동안에 할 연구를 언제부터 하라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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