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내음 그윽한 재즈로 돌아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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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06면

지난해 12월 5일 서울에는 7.8cm의 폭설이 내렸다. 대부분의 음악관계자들은 당일 예정되었던 스팅의 내한공연이 실패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노파심이 기우에 그쳤다는 사실은 금세 판명됐다. 눈보라를 뚫고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약간의 우려마저도 일소해버린 것이다. 신선한 충격을 준 이 사건은 국내에서 팝뿐만 아니라 재즈 팬들에게도 사랑받는 스팅의 저력을 방증하는 사례로 통한다.

10년 만에 새 앨범 낸 스팅

따라서 ‘자유인’ 스팅이 새 앨범 ‘더 라스트 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우선 반가울 수밖에 없다. 새 앨범으로는 만 10년 만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앨범만 손에 들고 돌아오지 않는다. 뮤지컬 제작에도 참여해 동명의 작품이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갈 계획이라 한다. 1980년대 조선사업의 해가 지던 영국 뉴캐슬을 배경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정규앨범 발표에 앞서 선공개한 싱글 ‘And yet’ ‘Practical arrangement’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재즈 감성이 그득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독함이 느껴지는 멜로디와 소박하지만 진실한 사랑을 찾으려는 노랫말이 맞물리면서 포용적인 대중음악의 자세를 잊지 않는다. 감미로운 스팅 고유의 목소리에 열광하는 팬들이라면 앞으로 즐겨 들을 애청곡이 더 추가될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스팅의 주요 레퍼토리도 재즈와 발라드를 적절하게 블렌딩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고급스러운 사운드에 중후한 외모가 겹치면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도회적 캐릭터를 구축했다. 곡을 듣게 되면 자연스레 이미지가 연상되는 식이다. ‘Englishman in New York’의 색소폰 전주가 흘러나오면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가을 신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Moon over bourbon street’를 들으면 도시의 허름한 바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영화 ‘레옹’에 삽입된 ‘Shape of my heart’는 내향적인 감성의 절정이다. 가을에 잘 어울리는 팝 가수로서 그를 능가하는 뮤지션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스팅을 단지 ‘차도남’으로만 이해한다면 절반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를 ‘자유인’으로 칭하는 이유에는 약 35년간의 음악경력이 끝없는 시도와 도전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몸담았던 밴드 폴리스(Police)의 뉴웨이브 사운드에서 시작한 궤적은 솔로로 나와 재즈로 전향한 뒤 월드뮤직에 대한 호기심까지 도달하며 종횡무진으로 뻗어나갔다. 관심폭은 특정 국가를 벗어나 대륙을 넘나들며 확장됐다. 북유럽·북아프리카·남미 등 지역 장르와 뮤지션과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1990년대 이후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세계의 소리들을 모아 보고자 하는 수집광의 기록물들이다.

음악 외적인 가욋일에도 적극적이다. 그를 정의하는 단어 중 뮤지션 이외의 다른 하나가 바로 운동가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열성회원이기도 하며 열대우림 파괴를 막기 위한 모금활동을 20여 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브라질 투어공연 중 부인의 손에 이끌려 아마존 부족을 만난 후 채벌을 막기 위해 자비를 들여 열대우림 일대를 매입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끊임없는 사회활동으로 전 세계를 누비지만 결국 음악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때마침 스팅의 귀환이 음악적 토대인 재즈로의 회귀라는 점은 의미가 깊다.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에 시야를 돌리고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본원적인 기반을 잊지 않는 모습이다. 낯익음과 낯섦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조율의 미학이 스팅을 전설의 반열로 이끈 동력이다. 오랫동안의 침묵을 깬 기지개지만 여전히 신뢰가 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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