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떻게 여가를 생활하나|공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조그맣고 동그란 동판에 비취빛 물감을 바른다. 색이 뭉쳐도 안되고 엷어도 안되고, 머릿속에 그리는 모양을 찾아 열심히 붓을 움직인다.『반지와 귀걸이를 만들 것입니다.』한국의 원로급 명우 복혜숙여사는 악선재의 아늑한 공방, 많은 여인들 사이에서「칠보」제작에 여염이 없었다.
요즘 서양에선 칠보「액세서리」가 멋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갖가지 색에 다양한 무늬로, 또 똑같은 것이 있을 수 없게 개성있는 작품 한가지씩 구워내야하는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칠보「액세서리」들은 몇몇 주부들이 취미로 배웠다가 부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칠보는 원래 불교에서 이르는 일곱가지 보석(금·은·유우·수정·마노·적주·산호)을 뜻하지만 공예로서의 칠보는 금속에 광물성 색제를 발라 구워내는 것을 말한다. 이 칠보는 옛 궁중에서 손꼽히던 여성장식품이었다.
요즘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칠보제품은 색색의 유릿가루를 물감처럼 개어 금속판에 바른 다음 1천3백∼1천5백도로 구워내는 것이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는 4년전 영친왕비 이방자여사가 서울에 연구소를 마련하고서 부터였다.
비원안의 악선재에선 방자여사가 직접 여성들을 가르치고 여기서 배운 분들이 서울시내 몇곳에서 개인강습소를 열었다.
현재 서울에서 칠보를 배우고 있는 주부는 1백여명, 이미 기술을 습득한 사람도 3,4백명을 꼽는다.『1주일에 두 번이 작업을 하면 재미도 나지만 인생을 배우게 되지요. 모든 것이 정성있는 손길로만 이루어지거든요.』- 노안을 무릅쓰고 아름다운 색을 찾아 손길을 쉬지 않는 복혜숙여사는 여인들이 자기를 꾸미는「액세서리」를 자기 손으로 만드는일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젊은 주부들에게 마다 권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배울 필요가 없이 자기의 미적「센스」를 닦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이방자 여사가 덧붙였다.
그러나 이 칠보는 주부들이 집안에서 하기 힘들다는 흠을 갖고 있다. 칠보를 구워내는「오븐」이 10만원이상을 홋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료값은 유릿가루가 국산도 나와 있어 비싼편이 아니라고 한다. 5백원내외면 멋진 반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
『아는분들 생일 선물은 모두 제가 만든 칠보로 하지요』- 선물 값을 아끼게 됐다는 한 주부의 말이다.
칠보강습소는 입회비 1천원에 그날그날 3백원씩 내면 된다.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재료는 따로 사야 한다.
금속성의 이 칠보공예와는 대조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해야하는 작업- 수예는 여인들의 꼼꼼한 마음이 이루어 놓은 아름다움이다.
옷고름에 매어단 앙징스런 수노리개에 치마폭 허리춤엔 꽃이 활짝핀 주머니.
그리고 어린이 버선끝에까지 명주실 수를 놓아 옛 아낙들은 바느질의「여기」를 즐겼다. 화려한 수를 놓은 수저집과 식구수대로의 주머니는 옛 처녀들의 필수 혼수품이었다.
여학교에선 누구나 수예를 배우지만 가정을 꾸며 살림을 해나가면서 색실을 만지는 일은 손쉽지가 않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지만 정신수양엔 좋은 작업입니다.』수예연구가 한상수씨는 살림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한올, 한바늘에 정신을 쏟으면서 미의 세계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수에도 혁신이 와야 합니다. 현대에 맞게 심미안이 높아야지요.』요즈음의 수예상품들이 촌스럽다고 하는데 이는 시대에 맞는 도안과 무엇보다도 적절한 응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여사는 지적했다.
색에 대한 안목과 선의 흐름에 대한「센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손끝의 기교보다 머리를 써야한다는 것이다.
수예는 재료보다「정성」으로 그 값을 기준한다. 때문에 주부들은 약간의 시간만 얻을 수 있다면 손쉽게 취미를 가꿀 수 있다. 수틀대(5백원)에 수틀(크기에 따라 50∼1천원까지)을 갖추면 만들고 싶은 것 들-. 조그만 베갯모에서부터 벽걸이, 병풍까지 안주인의 솜씨를 새길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강습소에선 수강료 없이 재료값만 받고 지도를 하고 있다. <윤호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