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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아동을 줄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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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서준
사회부문 기자

초등학교 2학년 재하(8·가명)를 만난 건 7일 오후 2시 32도를 웃도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놀이터에서다. 뜨거운 햇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없고 재하 혼자였다. 미끄럼틀 옆 그늘진 공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안녕, 무슨 게임이야.” “….”

 대꾸도 않고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했다. 게임이 끝나고서야 몇 마디 했다. 맞벌이하는 엄마는 밤 12시가 넘어야 집에 온다고 했다. 한 시간짜리 방과후학교가 방학 일정의 전부였다. 그 외 시간은 놀이터에서 논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1학년 동민(7·가명)이는 학원건물 셔터를 흔들고 있었다. 아침 두 시간짜리 공부방을 끝내고 주산학원에 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서였다. 동민이의 하루는 5개 학원으로 채워져 있다. 아침엔 엄마가 데려다주지만 나머지 학원은 동민이가 알아서 가야 한다.

 방학이 한창인 지금, 재하와 동민 같은 애들은 10만 명이 넘는다. 일터에 나간 부모도 괴롭다. 아이가 냉장고 반찬을 잘 꺼내 먹는지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나마 나홀로 아동을 돌봐주는 데가 학교 돌봄교실이다. 학교당 1개 정도만 운영해 주로 저소득층 아동들이 이용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돌봄교실에 들어가려면 새벽 6시에 선착순으로 줄을 서야 한다. 비용이 월 4만~7만원으로 저렴한 데다 공적 서비스여서 신뢰도가 높다.

 본지가 ‘안심하고 애 키울 수 있는 나라’ 시리즈에서 나홀로 아이 51명, 부모 37명, 전문가 13명을 인터뷰해보니 돌봄교실 확대가 가장 좋은 대안으로 꼽혔다. 박근혜정부도 14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오후 5시까지 초등학생 방과후 돌봄프로그램 무료 제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걱정되는 게 있다. 공약대로 ‘모두에게 무상 제공’으로 가지 않을까 해서다. 최근 복지 재원 관련 세금 논쟁에서 보듯 돈 나올 데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무상복지’가 생길 경우 나라 곳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도 저소득층만 무료다.

 강사·교실 등 인프라도 문제다. 지금도 강원도 일부 학교는 돌봄교실 강사를 못 구해 무자격자를 쓴다. 공짜가 되면 가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학부모는 돌봄교실 확대를 바라면서도 선뜻 아이 보내기를 주저한다. 프로그램 부재, 강사의 질 등을 못 믿어서다. 돌봄교실은 반드시 늘리되 인프라를 갖추면서 순차적으로 가야 한다. 나홀로 아동에게 더 좋은 대안은 부모다.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대상 아동의 연령도 공무원처럼 8세(현재 민간기업은 6세)로 늘려가야 한다.

이서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