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하는 크렘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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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 지도층 안에 분명히 이변의 징조가 있긴 하지만 당 제1서기 브레즈네프가 간단히 실각할 것으로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미국의 소련문제 권위자 리처드·파이프스박사가 16일 말했다. 하버드대학의 소련문제 연구소장인 파이프스박사는 서울서 소련 지식인의 동향에 관해 몇 차례의 강연을 하기 위해 15일 부인과 함께 내한했다. 6일 아침 모스크바서 발신된 크렘린내분에 관한 최신 뉴스를 듣고 숙소인 대연각호텔로 달려간 기자가 파이프스박사와 가진 일문일답은 다음과 같다.
-크렘린에 정변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데…?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러나 브레즈네프·팀의 실각설 못지 않게 브레즈네프의 지위 강화설도 꾸준히 전해지고 있어 예언을 할 수가 없다.』
-내분은 단순한 권력투쟁인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도전자들은 항상 명분을 갖고 있다. 셸레핀같은 반브레즈네프세력은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의 실패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최근 당 중앙위의 선전관계 책임자 4명이 한꺼번에 해임됐는데 정변설과 관계가 있는가?
『스테파코프(선전) 로마노프(영화) 미하일로프(신문) 메이샤체프(방송책임자)가 쫓겨났는데 후임이 누군지 밝혀지기 전엔 정변설과의 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문화정책상의 배려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현 지도층보다 강경파인 것으로 알려진 셸레핀이나 또는 다른 반브레즈네프파가 권력을 잡으면 대외정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큰 변동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흐루시초프 이후의 대외정책노선은 중공봉쇄를 위한 미-소 휴전으로 일관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월남전쟁에서 소련이 그만큼 온건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중공포위를 위해 미국과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대 중공정책은?
『지금처럼 전쟁을 피하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모택동이 죽기를 기다려 친소세력의 재기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공과 북괴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소련의 반응은?
『역시 북괴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소·중공간의 경쟁이다. 소련도 계속 북괴에 친선공세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중공에 대한 북괴의 중요성이 소련에 대한 북괴의 중요성보다 더 크다. 따라서 한번 북괴와의 밀착의 기회를 가진 중공은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물리학자 사하로프와 투르신은 역사가 메르베데프와 함께 크렘린지도층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공개편지를 냈는데 소련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소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가?
『사하로프와 그의 동료들은 소련을 위해 자유화, 민주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사하로프에 관한 한 이번이 두번째 공개 편지다. 지식인들의 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 같지 않다.』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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