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드 받은 뉴욕 불심검문 … 연방법원 "인종차별 소지 …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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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연방법원이 뉴욕 경찰의 불심검문(stop and frisk)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흑인·라틴계 등 소수 인종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라 셰인들린 연방판사는 12일(현지시간) “뉴욕 경찰이 적절한 이유 없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침해해 왔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부당하게 검문을 당했다며 2004년 뉴욕시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흑인 남성 4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는 “불심검문을 당장 중단하라고 명령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경찰의 의복 장착 카메라 사용을 규제하는 등 불심검문 감시 제도를 도입하라”고 명령했다. 독립 감시관으로는 피터 짐로스 전 맨해튼 지방검찰청 차장검사를 임명했다.

 셰인들린 판사는 판결문에서 “뉴욕 경찰이 피부색·인종 등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수사 기법에 의지해 왔다”며 “집을 나서면 누구나 언제든지 불심검문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떨며 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고위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효과적이라 믿는 정책을 위해 인종차별적 증거들을 무시해 왔다”며 “백인이었으면 피해보지 않을 사건이라도 흑인·라틴계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례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즉각 항고할 뜻을 밝혔다. 그는 “불심검문이 많은 생명을 살렸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치안유지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판사가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고 반발했다. 뉴욕시가 불심검문을 도입한 건 1990년대 초반이다. 그러나 블룸버그 시장이 취임한 2002년 이후 시행 건수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불심검문이 소수 인종에 집중됐고, 인권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뉴욕 경찰이 2004~2012년 집행한 불심검문 440만 건 중 80% 이상이 흑인 또는 라틴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불심검문의 90%에 대해서는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판결이 미 대법원의 1968년 ‘테리 대 오하이오’ 판결과 대비된다고 보도했다. 테리 대 오하이오 사건은 1963년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형사 마틴 맥패든이 존 테리 등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목격하고 영장 없이 이들을 불심검문하면서 촉발됐다. 맥패든은 이들의 옷 안에 숨겨둔 권총을 찾아냈고, 가게를 털려는 계획을 막았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행동만으로 시민을 부당하게 불심검문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당시 정황상 불심검문이 용인된다”며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한 수정헌법 4조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근거로 미 경찰은 범죄행위의 의도가 엿보이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영장 없이 수색할 수 있게 됐으나 인권 침해 논란이 이어졌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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