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론 새 정부에 바란다] 中. 북핵 냉정하게 대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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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1세기에 당선된 첫 대통령의 취임을 맞이하면서 산적한 현안들이 대두되고 있으나 새 정부의 국가안보 정책의 향방에 따라 대한민국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운명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무현 당선자는 취임과 함께 대북 관계, 한.미 관계, 지속적인 군사적 현대화 작업, 그리고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핵심적 가치인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한 중장기 통일 방안 정립 등의 산적한 국가안보 과제를 다뤄야 한다.

*** 남북 화해 구축되고 있지만

특히 한.미 관계를 재정립함에 있어 국민적 정서와 국민적 센티멘트 (national sentiment)도 중요한 변수지만 정서와 센티멘트가 결코 국가이익 (national interest)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새 정부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은 현재 2개의 중요한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다.

첫째, 아무리 남북 간의 협력과 화해가 구축되고 있다 하더라도 남한은 여전히 북한으로부터 다양한 군사적.안보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1994년에 체결한 북.미 기본합의서, 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안전협정, 그리고 핵확산금지조약 (NPT) 등 4개의 비핵 관련 협정과 조약을 위반하고 있다.

물론 대화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있으나 북한의 핵무기 계획이 정권 및 체제유지와 직결돼 있는 만큼 협상을 중심으로 쉽게 포기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일부 국민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장을 해도 동족인 우리에게 사용할 가능성이 없으며 오히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통일 한반도는 핵무기를 계기로 보다 동등한 대 주변국 외교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일 북한의 핵무장을 묵인할 경우 자명한 사실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 궁극적으로 일본의 핵무장 혹은 군사 대국화를 촉진시킬 것이며, 특히 주변국들은 한반도 통일을 적극적으로 저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새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조와 한.미 공조를 기반으로 제2의 핵 위기를 냉정하게 해결해야 한다. 북한은 앞으로 장거리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포기, 핵 연료봉의 재처리 가동, 그리고 지하 핵실험 등의 조치들을 포함한 극단적인 모험 강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이와 같은 움직임을 시도할 경우 기존의 한.미 연합 억지력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북한 당국에 엄중한 경고를 전달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과 러시아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주한미군의 위상과 관련해 많은 국민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3만7천명의 미군들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국은 이미 80년대 말부터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즉 한국 국민이 원하는 한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할 것이며, 만일 상황적 변화에 의해 한국 국민과 정부가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을 경우 미국은 언제라도 감군 혹은 철수할 준비가 돼있다는 점이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 주한미군 문제 國益 따져야

이와 같은 미국의 입장은 9.11 테러 참사 이후 더욱 더 굳어졌으며, 특히 본토 방위를 최우선 국가안보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냉전 종식 이후 미군의 총 병력수는 감소됐지만 작전 템포 (operational tempo)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을 포함해 유럽과 아시아에 전진 배치돼 있는 병력을 필요할 경우 본토방위 임무로 전환할 수 있는 검토작업에 이미 착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한.미 간의 보다 성숙된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만 미국의 전략적인 도움이 여전히 긴요한 현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없는 상황 속에서의 남북관계와 북핵 위기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정민(연세대 교수/국제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