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남긴「단락」|강변3로 살인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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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름답고 젊은 여인의 죽음뒤엔 너무나 숱한 화제가 번졌다. 처음엔 단란한 한 상류가정의 오누이가 자가용 승용차로「드라이브」하며 집에 돌아가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여겼던 「서울 강변3로 여인피살사건」은 뜻밖에도 친오빠가 여동생을 권총으로 쏘아죽인 것이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기구하게도 오빠는 남자관계가 복잡하기 이를데 없던 여동생의 고용살이 운전사.
『가난은 참을 수 있었어도 집안 망신과 수모는 견딜수 없었기에 동생을 죽였다』는 범행동기는 잇따라 세상 사람들의 한숨을 쉬게 했다.
그러나 구구한 억측과 화제는 고리에 고리를 물었다 한집안의 불륜으로 빚는 사건의 성질을 벗어나「센세이셔널리즘」의 물결까지 탔다.
죽은 정인숙양(26)은 20명의 국내외 저명인사 명함과 26명의 명사연락처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수사과정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실마리로 인숙양은 한국의「킬러」로 청부살인을 당했을 거라는 등, 저명인사들의 품에서 놀아난「밤의 요화」이었다는등, 처녀의 몸으로 낳은 그녀의 세살난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냐는 등, 이르는 곳마다 화제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죽은 인숙양은 그의 과거와 함께 비명에 갔고 이젠 그 누구도 정확하게 그녀의 생각을 그려낼 사람은 없다. 그 동안의 화제의 촛점은 인숙양의 생활상을 들추어주는 몇가지 사실이 너무나 특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밤의 상대자』는 누구누구였는가? ▲복수여권을 어떻게 쉽게 얻어 들수 있었습까? ▲외화 2천「달러」를 비롯, 1천3백만원의 돈은 어디서 난 것이냐는 등.
이번 사건이 남긴 개운치 않은 여운이 바로 이런 점들이다. 이것이 오빠가 자기누이동생을 죽인 한가정의 비극을 벗어나 그렇게도 많은 화제를 파도처럼 일게 한 이유가 됐을는지 모른다. 사건 발생후 수사진행의 과정도 이상했다. 당초 수사진은 사건의 해결을 낙관, 사건발생 3일만인 20일 상오 10시에 진상발표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돌연 발표를 보류했는가 하면 취재진에 서로 발표의 책임한계를 미루었고 일체의 함구령이 내러지는등 석연치 않은 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또 감식수사를 하고 있는 국립과학 수사연구소에는 수사원 아닌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했었다는 말도 났다.
결국 이같은 일련의 사실이 세간에 사실이상으로 구구한 억측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또 한가지는 이러한 억측과 보도의 과중에서「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염려하는 의견도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앞으로 친누이를 죽인 살인, 죄로 재판을 받을「오빠」가 그의 범행동기를 털어놓을 과정에서 이「베일」에 싸여「미스터리」와도 같은 모든 사건의 핵심이 또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 두고두고 개운치 않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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