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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나치 선전상 「괴벨스」와 여우의 비련|생존중인 바아로바 회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나치스」독일의 선전상 「구스타프·괴벨스」의 정부「리다·바아로바」(55)가 최근 「슈테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기의 기구한 애정 편력을 털어놓아 화제를 모았다. 1930년대 말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괴벨스」와「바아로바」의 「스캔들」은 사실은 그녀의 약혼자 「구스타프·프뢸리히」가 의식적으로 유포시킨 「가십」에서 발단된 것이었다.
23살난 요염한 여배우 「바아로바」가 「괴벨스」를 처음 만난 것은 1937년 겨울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 앞에는 으리으리한 「메르세데스」승용차 한 대가 와서 멎었다.
문을 열고 나선 사람은 당대의 권력자이자 그녀의 이웃 사람인 「괴벨스」선전상.
그는 「바아로바」의 손에 「키스」를 하고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그때 그녀의 약혼자 「프뢸리히」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프뢸리히」는 그녀와 「괴벨스」사이가 부정한 것이라고 단정하며 격분했다. 며칠이 안가서 이「스캔들」(?)은 「베를린」사교계와 연예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졌을 뿐 아니라 「프뢸리히」는 오히려 이 소문의 유포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멋모르는 사람들은 「프뢸리히」가 부정 현장을 덮쳐서 「괴벨스」의 따귀를 갈겼다는 뒷공론에 접하고선 그의 용기를 칭찬하고 그를 영웅처럼 추켜세웠기 때문이다. 「프뢸리히」도 연기인이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무대에 서서 청중을 향해 그녀와 「괴벨스」와의 염문을 기정 사실인양 「위트」와 재담까지 섞어가며 낭송했다.
마침내 「프뢸리히」와 파혼한 「바아로바」는 「괴벨스」의 열렬한 구애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처소를 불현듯 찾아와서는 혼자서 「피아노」만 미친 듯 두들기다간 본처와 이혼하겠다고 소리치곤 했다.
이 소문을 들은 「히틀러」는 대경실색했다. 부랴부랴 「괴벨스」와 그녀를 강제로 떼어놓고 그녀를 고향인 「체코슬로바키아」로 보냈다. 1년 후에 결혼하도록 해준다는「히틀러」의 속임수에 둘은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두 연인의 마지막 이별이 된 것이다.「체코」에서 종전을 맞은 그녀는 친 「나치스」분자로 몰려 투옥되었고 그녀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그 때문에 옥사까지 했다.
출옥 후 그녀는 「얀·코페이크」란 「체코」청년과 결혼해서 1948년 「체코」를 도망쳐 나오다가 붙잡혀 투옥되었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어느 「망토」입은 사나이가 감방 문을 열고 20분 이내에 도망치라는 것이 아닌가.
그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아르헨티나」「이탈리아」를 전전하다가 「오스트리아」시민으로서 「잘츠부르크」에서 정착했다. 「프뢸리히」 (67)는 그 후로도 반「나치스」영웅인양 우대를 받아왔다. 『나는 「괴벨스」를 진정으로 사랑했어요. 지금도 밤잠을 못 이룰 때가 있으니까요』라고 노「바아로바」는 지금도 술회하고 있다.
「괴벨스」는 선전의 귀재로 「히틀러」의 「역사적인 거짓말」들을 구상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천하를 주름잡던 그도 사랑만은 마음대로 안되었던 모양이다.

<슈테론 독점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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