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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밖으로 나온 사랑, 자연 속 아이들 보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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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홍규 신부는 경북 영천 산자연학교에서 학교 부적응아를 교육한다. 여름방학에는 일반 아이를 위한 캠프도 연다. 6일 정 신부가 캠프 참가 아이들과 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영천=프리랜서 공정식]

가톨릭 정홍규(59) 신부는 학교에서 실패한 아이들의 할아버지 같다. 대구에서 본당 사목을 하던 그는 1990년대 초반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환경·공동체라는 단어만 입에 올려도 사상을 의심받던 시절이었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2003년 불쑥 경북 영천 화북리 오산마을로 떠나왔다. 동네 할머니들이 아내는 어디 있느냐, 신부(新婦)가 왜 남자냐, 고 묻곤 했다. 폐교를 빌린 그는 오산자연학교를 차리고 청소년 생태캠프를 열었다. 2007년에는 오산 자연학교를 풀타임 학교로 전환했다. 자폐증·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치유하는 산자연학교다.

닭·토끼 키우고 식물 돌보며 마음 치료

 자연학교 10주년. 정 신부를 6일 만났다. 교장이시냐고 직책부터 묻자 그는 대뜸 “교장은 무슨 교장, 소사(小使)”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학교 청소하고, 아이가 울면 달려가고, 아프면 차 태워 병원에 데려가고, 싸우면 말리고…, 하는 일이 영락 없는 소사”라는 거였다.

 마침 3박4일 여름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방학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는 방학을 이용해 외부 학생을 위한 캠프를 연다. 운영 수익을 부족한 학교 재정에 보탠다.

 영남 곳곳에서 온 아이들 40여 명이 오전 내내 황토 염색을 배운다며 법석을 떨었다. 오후에는 인근 보현산천문대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다. 한데 대구에서 온 초등 6학년 기영(가명·12)이는 학교에 혼자 남아 논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단체활동에도 좀처럼 참가하지 않는 아이다. 정 신부는 “저런 아이도 학교에 들어오면 6개월이면 변한다”고 장담했다. 비결이 뭘까.

 학교에는 우선 닭·토끼 우리가 있다. 천연기념물 삽살개도 기른다. 선인장 등 다육식물 온실도 있다. “여린 생명을 대하면 아이들의 거친 감정이 절로 순화된다”는 게 정 신부의 지론이다.

학생 60명, 교사 34명 … 체험위주 수업

 학교 안은 친환경 시설로 가득하다. 지열을 이용해 기숙사 냉·난방을 하고, 박테리아를 활용해 화장실 인분을 처리한다. 하이라이트는 미니 정수시설인 생태연못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오수를 일주일 가량 정수해 개구리밥이 살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만들어 흘려 보낸다. 휴대전화·TV 없이 줄 서서 밥 타먹는 불편을 참아가며 자연 속에서 살다 보면 닫혔던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쉽게 친해진다는 거다.

 정작 정 신부의 교육철학은 따로 있었다. 가장 어려운 일을 묻자 “아이들이 다 다른 점”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의 개성과 요구에 일일이 맞추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공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런 개성을 무시한 획일화 때문이라는 설명이기도 했다.

 산자연학교 재학생은 초·중·고 합쳐 60명 정도다. 교사는 상근직 14명, 강사가 20명이다. 학교 규모에 비해 교사가 많다. 수업은 가급적 교실 밖에서 체험 위주로 한다. “공부지옥에 지친 아이들의 뇌를 쉬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 대신 그 시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정 신부는 “기독교가 성당 안에서만 자족해선 안 된다”고 했다. 신앙적 소신이다. 선악 구분에만 몰두하는 경직된 도그마에 빠지기 쉬워서다. 또 교회는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믿는다. 본당 시절 부임하는 성당마다 담장을 허물곤 했단다. 대학원에서 심리학도 전공했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 폭을 넓혀 신학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학교 부적응아는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피해자일 뿐이다. 사랑의 눈길로 보면 나름의 장점을 가진 아름다운 존재라는 얘기다. 교육은 그런 장점을 포착하는 일이다.

 정 신부는 “각자 재능에 열정을 불 붙여 아이의 기개를 살려줘야 한다”고 했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일, 예수의 사랑에 바탕을 둔 가톨릭(보편적) 교육철학의 한 얼굴을 보았다.

영천=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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