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없는 라오스 후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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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비엔티앤=이방훈 특파원>「라오스」국민들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말을 걸어도 잘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공산군이 밀려온 다는데도 천하태평. 걱정이 없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30년 전쟁에 살아 나온 것이 다행하다는 생각들이었다. 시골에 나가보면 「프랑스」통치시대의 촌락 모습 그대로이고 연초와 아편재배 이외는 하는 일이 없다. 2백 80만 전 인구의 90%가 농민인데 오랜 싸움으로 농업에 종사치 못하고 있다. 북부 민들은 미 군기가 수송해 주는 쌀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실정.
국민교 졸업생은 인구의 1%정도. 고교졸업생은 수백 명에 불과하다. 「라오스」어 보다 불어를 애용하는 실정이었다. 「라오스」신문은 2개, 부수는 말하잘것 없다. 기타 출판사업은 전무에 가깝다. 10분의 9가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 따라서 세금이라곤 수입세와 영업세 밖에 없다. 수입제한이 없고 수입세가 싸 금과 양주, 양담배 등 외국 물품이 동남아 인근 국에 비해 값이 싸다. 『금과 아편은「라오스」에서』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나라에서 유출되는 비중이 크다. 현금 유통이 2천 3백만「달러」인데 이것도 5개국 자금이며 이중 미국이 1천 6백만「달러」 부담하고 있다. 연 5천만「달러」의 미국원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라. 따라서 미국 대사관이 정부 보다 더 비중이 크다. 정부 한 부에 미국인 회계사 1명과 불란 서인 사무관리자 1명이 배치되어 이들이 행정과 재정사무를 취급한다.
2백여 명의 지배계급을 빼놓고는 모두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 부패와 무능력이 관청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인과 불인이 없으면「푸마」중립정부는 존립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카」,「메오」,흑「타이」,「라오스」족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데 민족구조이외의 정부 관념이 아직 없다.「루앙프라방」에 있는「사방·바타나」왕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나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불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중공,「버마」, 남북월, 미국,「캄보디아」에 둘러싸여 불신과 공포의 역사가 되풀이되어서인지 「라오스」국민은 운명론과 무감동 속에 지배되면서 독립의 능력은 제쳐놓고 당장 미국과 월맹이 평화를 회복해 주었으면 하고 갈망하고 있다.
「자르」평원에서 후송된 피난민들은「비엔티앤」성 6개소에 분산 수용되고 있는 약 1만 8천명. 이들은 천막 또는 나무에 짚을 붙이고 생철로 지붕을 한 오막살이집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캉시」피난민 수용소에 수용된 「아무이」양(26)은 14세 때「비엔티앤」에서 부모가 그리워 60년 9월 「콩·레」혁명 때 고향「시앵쿠앙」에 돌아가 공산치하에서 살았다. 「하노이」에서 3년간 간호원 훈련을 받은 후 공의진료소에서 근무했다. 운전사 남편과 강제 결혼을 했고 중공군의 중국어 교육도 강제로 받았다. 15세 이상 된 남자는 군에 끌려가고 부녀자들은 노무자로 혹사당했다. 미군과 「라오스」공군의 폭격에 떨면서 노역해 왔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산에 도망쳐 산길을 타고 남하했다고 말했다. 곧 「비엔티앤」에 내려가 친척집에서 살겠다고 했다.
전쟁이 계속되면 전 인구 4분의 1이 피난민이 된다는 것. 이들의 대책도 시급하다.
미국은 전쟁지원 뿐만 아니라 피난민 구조작전(라이스·오퍼레이션)에도 막대한 자금과 인원을 동원해야 할 쓰라린 처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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