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량 넓힌 정부·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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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정희 대통령은 10일 하오 국방·통일원 및 두 무임소 등 4명의 장관을 새로 임명, 일부개각을 단행했다. 올해 들어 처음인 이번 개각은 공화당의원의 입각이 특징. 정치제도 면에선 대통령 책임제에서 국회의원이 처음으로 내각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정부·여당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이른바 「협조체제」를 강화한다는데 이번 개각의 초점이었을 것 같다.
길재호 전 사무총장과 이병옥 정책연구실장의 무임소 입각은 권력주변의 정치상황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올 새 전기가 될 것이라는 풀이가 많다. 길재호씨의 「정치비중」과 이병옥씨의 사무적「행정참여」는 앞으로 내각의 정치색 뿐 아니라 집권당의 위치에도 얼마간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
공화당 정부수립 이후 당과 정부사이의 협화(초기의 정치적 불협화가 근래엔 행정적인 것으로 바뀌었지만)는 계속 되어 왔고 작년 10·21개헌으로 의원입각의 길이 틔어, 이번 개각은 이런 두 가지 여건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정부의 시녀」「정부로부터의 소외」 등으로 표현된 정부·야당의 관계는 특히 국민투표 때의 정부역할과 최근 공화당 공약사업의 부진한 실적으로 더욱 「클로스업」되었다.

<입각 설은 1월부터>
공화당의 원내총무가 바뀌던 지난 1월부터 공화당의원의 입각설은 꼬리를 잇고 있었다. 길·이 의원 외에 최 모 의원과 최 모 당무위원의 입각 설도 나돌다가 결국 길 의원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이 의원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부와 당의 교량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김영선씨의 통일원장관 기용은 이번 개각의 또 하나의 이색이다. 그는 개헌 반대 투위에 가담했다가 불과 3주일 전에 경제과학 심의위원이 된 구 민주당 각료.
아직껏 집권당의 체취를 느낄 수 없는(아마 오랫동안 그럴 것 같은데) 그가 통일원을 맡게 된 것은 통일정책을 초당적 범국민적 토대 위에서 마련하려는 뜻인 것 같다.

<가슴 무거운 「의원」>
임충식씨와 신태환씨의 퇴진은 이런 정치적 의미와는 관계없이 하나의 「보강」조치로 보고 있다. 임씨의 경우, 국가안보 정책의 강화라는 요청과 함께 병무 행정의 부정 등이 이유가 되었고, 신씨는 지난 2월 실시한 통일여론 조사와 그 발표가 관계부처와의 사전조정이 없어 안보정책상의 차질을 가져 온데에 인책한 것이라고 고위관계자는 설명했다. 정일권 국무총리는 개각 발표 뒤 『모두 본인의 원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개각을 통고할 때 가슴이 무거웠다』고 했다.
이번 개각의 동기와 관련, 내년 총선에 출마할 장관들이 대상에서 제의된 점은 연내에 한번쯤 더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뒤따르게 한다.
박 대통령은 10일 아침 「엑스포 70」대책을 보고하러 간 정 총리에게 개각의사를 밝혔으며 정 총리는 이날 낮 주례를 보러 가던 중 갑자기 공화당사로 방향을 돌려 윤치영 당의장 서리 등 당 오역에게 통고했다.

<인선은 대통령 재단>
이 시간 신 전 통일원장관은 국회 외무위에서 서독방문 결과 등을 보고하고 있었고, 김윤기 경제담당 무임소 장관은 대도시 인구조절 방안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한 준비에 바빴다. 예측되던 개각이었지만 어느 때 보다도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인선은 박 대통령 스스로의 재단이었던 것 같다.
이번 개각의 초점인 의원입각은 권력관계의 변화라는 정치적 의미 외에 내각 안의 기능 면에서 약간의 문젯점이 대두될 것 같다. 강상욱 청와대 대변인이 개각을 발표하면서 『경제담당 무임소장관이 기획조정실의 업무를 관장케 된다』고 말한 점이다.
정부 조직법상 국무총리의 직속기관을 무임소 장관실이 어떻게 관장할 것이며, 이를 위해 관계 법률이나 규정을 개정해야 된다. 아무튼 정부와 당의 협조라는 명분이 실제 행정의 까다로운 테두리와 복합적인 정치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의원입각으로 특징지어진 이번 개각은 정치와 행정의 조화를 찾으려는 어려운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윤기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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