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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한 일본의 "대공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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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 조동오 특파원]미 승인국(북괴·중공·월맹·동독)여행에 대한 일본정부의 강경 정책은 서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일본 법무성은 친족방문. 성묘 등 이유로 북괴 방문 후 재입국을 신청한 약 2천명의 조총련계 중에서 또다시 6명에 대해 여행을 허가했으며 「경제적 이유」로 중공방문을 신청한 34명의 재일 교포 가운데서 21명의 중공행을 허가했다. 또 일본 외무성은 그 동안 억제해온 일본인의 미 승인국 여행을 해금, 국회에서 심의중인 여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대로 일본인들에게 「무제한 여행자유」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지난주 화상 21명의 중공여행 허가에 이어 조련계의 북괴행, 일본인의 여행자유화 등 일련의 대공산권 정책의 변화는 국제법상의 국가승인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도 중공에 대한 「북평정부」호칭과 아울러 일본의 대공미소 정책의 일환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한편 일본정부는 그 동안 중단 상태에 있던 재일 교포 북송을 재개함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조련계 6명에 대한 북괴방문 허가 방침과 함께 한국정부를 자극하고 있다.
「호리」(보이무) 일본 관방장관은 9일 사회당 소속의 「야마모도」(산본행일) 의원의 압력을 받고 「우시바」(우장신언) 외무차관에게 『67년 재일 교포 북송협정이 만료되기 이전에 북송을 신청했던 1만 5천명에 대한 북송문제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측이 주장하는 「잔무처리」란 이름의 새로운 교포북송 문제는 67년 11월 이른바 「캘커타」협정이 만료된 후 미 송환 교포 1만 5천명을 처리키 위해 일본적십자사와 북괴적십자사가 같은 해 「실론」수도「콜롬보」에서 접촉을 시작한데서부터 비롯된다.
일본과 북괴는 69년 「모스크바」에서 다시 모여 두 차례 회담했으나 북괴는 협정연장을 주장한 반면 일본측은 협정만료시의 송환 희망자만을 송환하고 그 이후의 희망자에 대해서는 제삼국인의 출국방식을 적용할 것을 주장, 유산된 채 지금까지 잠잠했었다.
갑작스레 일본정부가 조련계 북괴 왕래문제, 교포 북송문제를 한꺼번에 들고 나온 것은 국내에선 사회당과 공산당의 정치적 압력, 밖으로는 한국정부의 강한 반발 등으로 골치 아픈 이들 문제를 차제에 일괄처리, 어떤 결말을 보자는 속셈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조총련계 6명의 북괴방문 「케이스」에 대해서 한국정부는 즉각 항의를 제기하고 작년 1월 역시 6명의 조총련계의 재입국을 허가한 다음 「사또」수상이 박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가운데서 보장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번 정부의 결정을 선례로 삼지 않겠다』는 요지의 「신의」를 상기시켰다.
68년 12월 18일 일본법무성이 친족방문 등 이유로 재입국을 신청한 8명의 조총련계에 허가결정을 내린 다음 급거 일본에 온 최규하 외무부장관이 「사또」수상과 만나 엄중한 항의를 제기하자 결정의 집행을 보류, 「인도적 이유」속에 잠재하고 있는 「정치적인 이유」를 제거한다고 8명을 재심사, 그중 2명의 결정을 취소하고 6명만을 출국시켰었다.
더욱 조총련계 출국문제가 한·일간의 커다란 외교문제로 번져 장기영 전 부총리가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하네다」공항에 도착하던 69년 1월 18일(하오 KAL기 편으로 도착) 상오에 일본정부는 법무대신이 전격적으로 결재, 집행하였고 이 결정에 따라 6명의 조총련계는 1월 28일 대판항에서 조총련의 대대적인 환송대회를 거쳐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다음 「송도환」편으로 흥남으로 행했던 것이다.
지난 주말 광주 교역 회에 참석하려던 21명의 재일 화교의 여행을 허가할 때 일본 외무성은 조총련계이 북괴방문은 종전과 같이 순수한 「인도적 이유」에 한하지만 「인도적 이유」의 범위는 행정재량으로 넓힌다는 것을 암시했다.
지금까지 중공에 대한 화교연맹을 「인도적 이유」에 한정해 오다가 지난 9일부터 북평에서 열린 일·중 각서 무역회담의 타개 지원책으로 「경제적 이유」를 첨가시킨 일본정부의 처사로 볼 때 「인도적 이유」만으로 제한해온 북괴행도 언제 「경제적 이유」가 추가되고 「정치적 이유」까지 고려될지 조변석개의 정책을 예측키 곤란하다.
외무성 집계로는 작년 1년 동안 발급된 미승인 공산권행 여권은 중공이 2천 5백 72건, 동독 2백 2건, 월맹 50건, 북괴가 10건이다.
이 수자는 정식으로 도항을 허가한 「케이스」지만 여행제한의 벽을 뚫고 소련 또는 향항을 목적지로 출국한 일본인이 현지에서 중공 또는 북괴의 「비자」를 받아 「새치기」여행하는 예가 많았는데 작년에만 중공에 1백명, 북괴에 50명, 월맹에 5명이 출국허가 없이 들러 주로 상담을 진행시켰다. (작년 10월 평양의 소위 일조공업 전람회에는 40명 참가).
일본 외무성은 억제해 온 「정치적 여행」도 상대국의 사증이나 정식 초청장만 있으면 여권법 개정과 아울러 대량으로 허가할 방침이다.
물론 일본정부는 국제적인 해외도항 자유화 경향에 영합한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실은 미 승인국에의 왕래 촉진으로 대 공산국가와의 외교자세도 온건화하고 동시에 야당에 교태를 보이려는 속셈이다. 조련총계의 북괴 왕래 범위 완화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재작년 북괴의 소위 건국 2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려고 조총련계에서 20명의 재입국 허가를 신청했을 때 일본정부가 국가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불허가 처분했으나 그 뒤 조총련에서 행정소송을 제기, 동경 지재와 고재에서 모두 일본정부가 패소하여 현재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재일 화교 32명의 허가 인원수를 결정할 때도 법무성은 19명, 공안조사위원회는 24명, 경찰청은 3명, 외무성은 5,6명 정도를 상신했으나 조정역할을 하는 내각 관방에서 정책적으로 고려, 20명 이상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라는 점에서 21명으로 낙착시킨 것이다.
「정책」을 신축자재하게 다루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앞으로 한국·자유중국 등 관련 자유 세계국가의 거센 반발에 부딪칠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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