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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봉, 영장발부 직전 잠적 … 열흘 넘도록 못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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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 함바(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따주겠다며 사기 행각 등을 벌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함바브로커 유상봉(67)씨가 최근 잠적해 경찰이 체포조를 구성, 추적 중인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중앙일보 7월 16일자 1 , 10면

 유씨는 지난달 25일로 예정됐던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26일 다시 잡힌 심사에도 불응한 채 주변과 연락을 끊었다. 법원은 이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유씨의 변호사를 통해 일정을 조율하면서 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시점부터 그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유씨가 브로커와 사기 행각을 통해 모아놓은 자금이 충분한 점 등에 미뤄 해외로 밀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올 3월 만기출소한 유씨는 구속(2010년 11월)된 지 4개월도 안 된 2011년 2월부터 세 차례 구속집행정지와 병보석 허가를 받았다. 경찰은 이 기간 중 유씨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기 행각을 벌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5월께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6월 25일 수차례 출석에 불응한 유씨를 긴급체포하고 이튿날 검찰에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보강수사를 벌인 경찰은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검에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여 영장실질심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경찰과 유씨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유씨는 부인 김모씨와 함께 행적을 감췄다. 이들은 “유씨가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 범죄를 저지른 게 들통났고 이로 인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상 구속이 확실하다고 판단해 도피를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유씨가 과거 함바 비리를 저지를 당시 알고 지냈던 유력 인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고 전했다. 유씨는 함바 운영권 수주 등을 부탁하면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비롯한 전·현직 고위 공무원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010년 11월 구속 기소됐다.

 현재 유씨는 구속집행정지를 받은 기간 중 동업자 박모(52)씨 등으로부터 사업자금 조로 20여억원을 받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돈의 일부를 로비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이던 지난해 5월 수도권 한 지자체의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 예정지 함바 운영권에 눈독을 들이고 인허가권을 가진 해당 지자체 담당 간부, 시공사 고위 임원 등에게 접근해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경호실 직원 박모(46)씨도 있었다. 경찰은 박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이를 알게 된 청와대는 박씨를 지난달 파면 조치했다. 경찰은 박씨 주변 계좌 추적을 통해 그가 유씨에게서 1억2000만원을 받은 정황을 잡았다. 박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유씨에게 1억2000만원을 빌려 쓴 뒤 다시 돌려줬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유씨와 박씨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씨가 유씨의 함바운영권 로비에 도움을 준 단서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를 한두 차례 더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합법적 탈옥’ 다시 도마에=유씨는 항소심 진행 중 구속집행정지를 받았다. 그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갑상샘암·당뇨 등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허가받았다. 법원은 담당 검사와 상의해 친족 및 보호단체에 피고인을 맡기거나 주거지를 병원 등으로 제한해 결정한다. 유씨 역시 자택과 병원에 한해 이를 허가받았으나 감시 장치가 없어 마음대로 주소지를 옮기고 외부인과 접촉할 수 있었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에 대한 형집행정지도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합법적 탈옥’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 여대생 청부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중견기업 회장 부인 윤모(68)씨가 형집행정지를 통해 4년간 병원 특실에서 호화생활을 해 온 사실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문병주·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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